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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Sep 01. 2022

신은 우리를, 우리는 법을 만들었다

부러진 화살(Unbowed, 2012)

<부러진 화살> 속 진실을 숨기는 자들


본 내용에 앞서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또한 이 글은 해당 영화에 대한 평론으로, 이 영화를 모티브로 한 실제 사건과 인물, 기관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세상에 불행한 일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누구나 세상살이가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최소한 억울한 일은 없어야 한다. 만약 진실과 거짓이 서로 싸운다면 결단코 진실이 승리해야 한다. 그래서 사건이 벌어지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조사를 하고, 심문을 하고, 부검을 하고, 여러 차례 재판을 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억울한 사람과 억울한 일들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그것은 아마도 누군가 진실 앞에서 솔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러진 화살>은 2007년 1월 15일, 실제 발생한 '판사 석궁 테러 사건'을 각색한 영화다. 극 중 주인공인 김경호는 대학입시시험 문제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공개적으로 오류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학교 측은 그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하여 그를 교수직에서 부당하게 해고한다. 이에 맞서 그는 교수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하지만 결국 패소하고 항소심마저도 기각당한다. 그러자 그는 재판이 결코 공정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석궁으로 판사를 위협한다.


김경호는 결국 재판에서 패소한 후 감옥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모습은 마치 법이 결코 정의롭지 않은, 권력으로 변질된 모습으로 연출된다. 하지만 법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다만, 그 법을 지키지 않거나 악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세운 악법이 문제인 것이다. 법이란 최소한 억울한 사람과 억울한 일을 없애기 위해 진실을 찾아야 하는데, 어느 한쪽에서는 이 진실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때때로 부정하고 외면해야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세우는 규율은 때때로 법을 공부하지 않거나 지식을 겸양하지 않은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한 공포로 변질된다. 자신들이 세워둔 울타리가 있으니 당연히 따라야 하고, 따르지 않으면 벌을 주겠다는 것이다.


김경호가 감옥에서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은 매우 충격적이다. 그들이 하라는 대로만 했어도 이런 끔찍한 일은 면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정도의 공포일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권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그들이 채찍을 두려워할 때쯤 성문 위에 채찍을 걸어둘 것이다. 그 이후부터 우리를 길들이는 것은 채찍이 아니라 바로 공포다. 법도 마찬가지다. 법이란 누군가에게 벌을 주기 위한 규율이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사회적인 약속이다. 따라서 법은 결코 약자에게 휘두르는 채찍이나 공포로 변질되서는 안 된다.


이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던 대학입시시험 문제도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이 시험이 어른들의 눈에는 단순히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어떤 학생은 성취감이나 환희를 느끼고, 반대로 어떤 학생은 좌절감이나 실의에 빠진다. 때문에 학생들이 느끼는 대학입시시험의 무게는 남아있는 삶의 무게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또한, 학교란 우리 사회를 보다 정의롭게, 그리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인재를 양성하고 교육하는 산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 속 학교는 대학입시시험에 출제된 수학 문제에 오류가 있음에도 그것을 밝히거나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감추기에 급급하다. 정의보다 이득이나 권력을 위해 본질에서 도태된 셈이다. 


그러나 <부러진 화살>을 보면서 우리는 단지 불편할 뿐이다.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지배층에 의해 분할된 자신의 권리에 대해 만족하며 살아갈 뿐이다. 또한 하루빨리 자신의 위치가 상승되기를 기대하며 그들처럼 진실을 은폐하기도 한다. 극 중 김경호의 행동은 지배층의 억압에 맞서는 피지배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지배층에 가까웠던 자신의 지위를 회복하려는 노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배층이건, 피지배층이건 진실 앞에서는 모두 다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진실은 누군가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


어쩌면 진실은 끊임없이 지배층으로부터 은폐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지배층이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대중이다. 그들은 언제나 두려워한다. 우리가 그들의 말과 행동에 관심을 갖는 것을. 그들이 직무를 다하는지 감시하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결정하는 진실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그리고 반대로 그들은 언제나 바라고 있다. 우리가 사회와 정치에 관심 없이 사는 것을. 우리가 법을 두려워하는 것을. 하지만 늘 그렇듯 우리는 함께 견제하고, 토론하며, 행동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들이 숨겨둔 진실을 은폐의 위기로부터 반드시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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