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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Nov 17. 2022

구멍 난 지붕

며칠 전

아니, 어쩌면 헤아릴 수 없이

아주 오래전부터 지붕에 구멍이 났다


집 주변에 감나무와 화초들

그리고 잡초까지 무성하게 자랐지만

아무도 구멍 난 지붕을 고치지 않았다


지붕 위로 먹구름들이 모여들고

기어이 한 방울씩 집 안으로 떨어지면

그제야 내 몸 하나 젖지 않겠다며 

하나둘씩 구석으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평온한 것 같으면서도

집안 가득히 물이 차오르면

작은 것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갔다


일부 살아남은 작은 것들만 남아서

차오르는 물을 빼내고 빼내는 동안

다 자란 것들은 구멍 난 바가지를 선심 쓰듯 내어주었다


며칠이 지나도 도무지 퍼낼 수 없는

슬픔으로 또 다른 작은 것들이 익사하는 동안

다 자란 것들이 그제야 얼굴을 드러내며

한 손에는 회초리를 들고 혼낼 사람을 찾아다녔다


며칠 후

아니, 어쩌면 헤아릴 수 없는

아주 가까운 날에 저 구멍 난 지붕 위로

또다시 비가 내린다


2022.11.17 황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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