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필 감독의 신작 <탈주>가 지난 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탈주>는 지난 7월 3일 개봉해 총 관객수 200만을 가뿐히 넘어(현재 기준 255만 이상) 흥행 대열에 합류한 영화로, 이제훈과 구교환이 주연을 맡아 일찌감치 화제가 되었던 영화기도 하다. 전작인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이어 두 번째로 성공을 거둔 영화로 흥행은 물론이고, 비평적인 면까지 두루 깔끔하게 잡은 화제작이다. 극장에서 받은 호응 만큼 넷플릭스에 공개되자마자 단숨에 1위를 굳히기도 했다.
<탈주>는 남한으로 탈주하기 위해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치밀한 계획을 짜는 병사 규남(이제훈)과 어떻게든 규남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의 추적극이 골자인 드라마다. 일반적인 비무장지대 혹은 남북 관계를 그린 밀리터리물들과는 다르게, 이 영화에서 남한군은 철저히 배제된 채 진행되며 주 무대는 규남과 현상이 다툼을 벌이는 북한이다. 10년 만기 전역을 앞두고 자신의 계획이 실현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규남에게 소대원 동혁(홍사빈)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동혁은 탈북자의 자식으로 혈육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다며 규남의 계획을 위에 보고하지 않는 대신 남한으로 함께 가줄 것을 요청하는데, 이때부터 규남의 단독 계획은 규남과 동혁의 동행으로 잠시 전환된다. 그리고 곧 둘은 규남의 오랜 친구이자 규남에게 가장 위험한 인물인 현상과 마주한다.
규남의 탈주 계획이 여러 가지 장애물로 인해 빠르게 전환되거나 전화위복을 겪으면서, 현상은 빠르게 규남을 뒤쫓는다. '탈주'라는 단 하나의 단어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영화지만, 규남과 현상을 묶는 '탈주'는 결국 극이 벌어지는 배경인 북한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넓게 말해 현재의 상황에서 도망치거나 도망치고 싶은 자아를 가까스로 억누르는 두 청년의 이미지가 각각 규남과 현상으로 발현된 것인데, 때문에 각자의 신념이 밀어붙인 극한의 상황에서 대치하는 두 인물의 분열과 갈등은 <탈주>의 백미를 이룬다. 체제에 사로잡혀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사람과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시도하고 내질러보는 둘의 운명이 남방한계선 앞에서 갈린다. 속도감있고 아주 치밀하게 짜인 초반의 장면들에서 중후반으로 갈수록 느슨하고 어딘가 빈 듯한 서사가 없지 않으나, 결국 '탈주'라는 목표를 두고 서로 갈리는 규남과 현상을 끝까지 추격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역할은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
<탈주>는 개봉 직후부터 수많은 서브텍스트들을 생성하는 화제작이었기도 한데, 그 중심에 조연인 동혁 역할의 홍사빈과 현상과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는 선우민을 연기한 송강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선우민과 현상이 만나는 장면은 퀴어코드를 배제하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노골적인 장면들이 대부분이라, 이들이 마주하는 아주 잠깐의 장면들로 인해 현상의 과거 서사는 더없이 풍부해진다. 탈주자인 규남이 모르는 보위부 장교 '리현상'이라는 인물을 그대로 입은 듯한 모습의 구교환 배우의 압도적인 연기는, <탈주> 전체를 가장 강렬하게 휘어잡는 중심 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를 하는 청년들의 치기와 우정, 혹은 사랑으로 즐길 수 있는 아주 즐거운 영화. 사실 모든 걸 다 제치고 '북한 고위급 장교를 연기하는 구교환'이라는 수식 만으로도, <탈주>를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