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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저 Mar 14. 2022

<논어>, 예를 생각하다

진정한 '예(禮)'란 무엇일까?


[필로어스 위대한 질문: '예(禮)']


'예'를 생각하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예'는 부담스럽고 어렵다. 검은색 정장에 높은 구두를 신고 출근하는 날은 회사에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이다. 어려운 직장 상사와 식사를 하거나, 몇 주 전부터 약속한 중요한 외부 인사와의 만날 땐, 혹여 실수를 하지 않을까 손에 땀을 쥘 만큼 긴장이 된다. 나의 태도, 옷차림 등 신경 쓰이는 것들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나는 형식적인 '예(禮)'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자가 말하는 진정한 '예(禮)'는 치우치지 않는 것


林放問禮之本. 子曰, 大哉問. 禮與其奢也寧儉, 喪與其易也寧戚.
(임방문례지본. 자왈, 대재문. 예여기사야영검, 상여기이야영척)

임방이 예의 근본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훌륭한 질문이로다! 예란 사치하는 것이 검소함만 못하고, 장례는 주도면밀하게 잘하는 것이 마음으로 슬퍼하는 것만 못하다."(3.4)

-<논어> 八佾-


<논어> '팔일(八佾)’에서는 주로 '()' 대해 다루고 있다. 공자는 '()' 근본은 겉으로 보이는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나치게 화려하고 사치스러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치보다는 오히려 검소한 편이 좋다고 했다. 장례도 마찬가지다. 예식에 치중하느니 진심으로 슬퍼하고 돌아가신 분을 애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 근본이라고 했다.


예의를 차린다는 것은 절차나 형식에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해야 하는 것인데, 쉬운 일은 아니다. 보통은 '예'를 잘 지키고 갖추려 하다 보니 보이지 않는 내면보다는 눈에 보이는 외형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그렇다고 외형을 아얘 부정하는 것도 옳지 않다. 내면이 중요하다고 해서 지나치게 검소한 옷차림과 느슨한 태도도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예(禮)'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넘치지 않는 않는 것이다. 지나치게 청렴결백하면 오히려 인색하고, 지나치게 인자하면 오히려 우유부단하다. 지나치게 강직하면 오히려 과격하고, 지나치게 시시비비를 가리면 오히려 각박하다.


행동을 행할 때 형식과 내면 어느하나 모자라지도 않도록, 치우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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