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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저 Jul 27. 2023

소소하고 사소하고 수수한

수수한 당신과 사소한 일로 소소하게 보내는 삶

비슷한 단어에서 오는 어감의 차이를 발견하곤 한다. ‘소소’하다가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의미라면, ‘사소’하다는 보잘것없이 작거나 적다는 것을 뜻한다. 비슷한 의미이지만 내가 느끼기에 ‘사소’하다는 다소 부정적인 어감을 지닌다. ‘전혀 사소하지 않은, 사소한 행복’처럼 ‘사소’하다는 부정적인 강조어와 더 어울린다. 일상에서 오는 소중한 것들은 모두 사소한 것들로부터 태어난다. 사소한 것은 소소해 보여도 그 순간들로 인해 하루는 꽤 괜찮은 날이 된다고 깨닫는다. 작고 귀여운 행복을 떠올린다. 주말 오후 햇볕이 잘 드는 카페에 앉아서 좋아하는 빵을 먹는 일, 햇살 가득한 이른 아침에 화분에 물을 주고 새로이 돋아난 연초록빛 이파리를 한동안 바라보는 일,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는 일, 건조기에서 갓 꺼낸 뽀송뽀송한 옷의 촉감을 느끼는 일, 누군가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는 일, 나 역시 누군가에게 뜻밖의 선물을 건네는 일,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의 자연스러움, 아스라이 사라지는 기억을 곱씹어 추억하는 일, 가끔은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일, 그런 내가 멋져 보이는 일은 모두 소소하지만 사소하지는 않다.


문득 수수한 당신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수수한 사람은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까다롭지 않다. 어느 공간, 어떤 시간에 만나도 수월하고 무던해서 편안한 사람이다. 굳이 나를 내세우려 애쓰지 않는다. 수수한 사람은 스스로 움츠러들지 않고 주변보다 넘쳐흘러 시선을 어지럽히는 일도 없다. 하루를 무던히 살아내다 고개를 들고 지긋이 바라본다. 돌이켜보면 수수한 사람들에게 어떠한 강인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내면이 굳센 사람에게서 은은하지만 곧은 방향으로 풍겨 나오는 인상이랄까. 내가 속하지 않는 외부 환경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당신에게서 평온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삶이 소소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사람과 소소한 장을 보고 저녁을 먹고, 여유로운 밤엔 함께 산책한다. 오늘 있던 일도 좋지만, 이미 몇 번이나 들었을 이야기부터 미래 이야기까지 나눠도 좋다. 때론 해결하지 못할 어려운 이야기라면 사소한 것이 되어도 좋다. 그렇다면 수수한 당신이 필요하다.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수수한 당신과 사소한 일로 소소하게 보내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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