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i Dante Nov 28. 2019

뱃사람이 시인에게

당신이 시인이라니 묻고 싶소. 그 시 써서 먹고 살만 하오? 지켜보니 당신 일이라는 게 머릿속에 뜬 생각 잡아다  종이 위에 올려놓는 것이잖소?  나도 생각은 많은 사람이오.  생각 잡아 쓰는 기술 좀 내게 가르쳐주시오.  당신이 쓴 시를 보니 뭐 그리 나와 다른  특별한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닙디다. 다 내 옆을 왔다 가는 사람하고 물건들 얘기드만.     


시인 양반.  나이 서른일곱 이랬소? 내가 당신보다 십오 년은  더 살았으니 경험으로야 당신 웃돌 거요.  이 몸 시골에서 초중 나와 가까운 도시의 대학 다니다가 그 대학 나와봤자 전망도 별로고 맨날 소주만 마시고 깽판 치는 아버지 보는게 지긋지긋해 학교 때려치웠소. 일찌감치 서울 올라와 삐끼에서 부동산 떴다방까지 오만가지 일을 거쳐 이제는 이렇게 먼 나라 아득히 안개 끼는 항구를 들락거리는 컨테이너선의 뱃사람으로 풀렸지만 그간 세월 넘어오면서 수많은 생각을 해왔다오.


선한 생각만 했겠소. 별의별 생각을 다했소. 그 생각 풀어놓으면 어떨 땐 나는 천국에 있어야 할 사람이고 어떨 땐 지옥에 있어야 할 사람이오. 마음속으로야 하루에 열두 번을 천국과 지옥을 드나들었소.    


당신 시 중에 지난번 뱃머리에서 석양에 읽어준 시 순자야 보고잡다 듣고싶다. 그 시 좋습디다. 삼십년 전 고향 집 떠나면서 윗마을 행순이한테 내 맘 탁 내려놓고 쏟아냈던 푸념과 똑같더구만. 마음 같아서는 지금 강원도 산골에 시집가 아들 넷 푸짐하게 낳고 산 중턱에서 고냉지 채소 하면서 이 풍진 세상 살아가는 그녀에게 그 시 읊어주고 싶다오.  


당신이 이렇게 심심하기 짝이 없는 컨테이너선을 타고 먼바다를 건너가 보겠다고 나선 발상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오. 어쩔 것이요 기왕지사 이 너른 바다 한가운데서 너나들이 삼아서 얘기 나누면서 십오 년 세월 터울 지워가며 세상을 탄해 보는 것도 멋 아니겠소? 그 정도는 각오하고 이 배에 올랐을 것 아니오? 나 같은 뱃사람을 벗 삼아  보는 것도 인생의 새로운 간척일 거요.


인생을 우려낸다는 시를 쓰는 양반이니 이 늙은 뱃사람의 늦된 소리를 지금 이 바다에 무늬 새기며 부는 편서풍에 섞어 시 한 편 지어보면 어떻소? 마음 잡고 나선 이 항해에서 시 한 쾌는 제대로 엮어봐야 할 것 아니오?


생선조림 맛 좀 보시오. 요게 모습도 날렵한 생선 곱게 손질해 양파, 대파, 고춧가루에 간장 풀고 고구마 줄기 해풍에 말린 것 바닥에 깔고 다진 마늘에 청주까지 섭렵해 젊은 시절 담 넘어올 처녀 기다리듯 시간 들여가며 조린 내 인생 최고의 레시피요. 요리 맛없다고 물리친 인사는 아직 없었소. 지난번 블라디보스톡 항구 정박 때 도선사가 내 생선조림 맛보고 냄비채 들고 내려가 동료들에게 이 맛 좀 보라고 떠들더니 내게 던져준 것이 지금 당신 앞에 놓여있는 보드카요.     


아따 이 양반 갑자기 술 마시다 그렇게 눈 빨게 갖고 울어 버리면 나는 어쩌라는 거요? 내가 뭐 못할 말 했소? 자자자 일렁이는 마음을 잦아들게 하는 것은 또 다른 생각이오. 지금 당신을 눈물짓게 하는 생각이 무엇이오? 다른 생각으로 그 눈물 나게 하는 생각 덮어 버리시오. 무슨 깊은 사연이라도 있소?


참 기가 막힌 사연이오.


사연에 터 잡은 생각을 덮어줄 재미나는 얘기라도 한가닥 풀어드릴? 알겠소. 남의 얘기로 잠재울 수 있는 설움 아니면  설움에 깃들인 눈물 바닥을 봐 버리시오. 세상 살다 보면 무엇이든 바닥을 봐 버리면 다시 살아갈 용기도 생기고 버틸 힘도 생기고 그럽디다. 세상사 별것 있다요 그렇게 바닥과 천장을 파도 너울대듯 사는 것 아니겠소?      


그 눈물 가라앉힐 핑계로 내 얘기 들어보시오. 짧은 생각에 당신 시 쓰는 게 쉽게 보이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 나도 대충 그 방편이나 몇 개 당신에게 배워갖고 이 망망한 바다건너며 어쭙잖은 시라도 몇 편 써볼까 했더니만 그게 쉬운 일만은 아닌가 보오. 시 쓰기는 감정 풍부하고 언어 도구 사용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만 하는 일 같아서 하는 말이오.


나도 감정이라면 꽤나 차오른 사람이니 계발하면 그 감정 끄집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시 쓰는 재료인 그 감정이란 게 시인 아니면 품을 수 없는 특별한 것이요? 훈련하면 무르익는 기술이 아니라 천부로 하늘에서 내리는 재능이요? 천부라면 내 외람이고 아니라면 그 감정의 두레박질 기술 좀 내게 전수해 주시오. 대신 이 항해가 끝날 때까지 보드카와 생선조림은 삯 대신 내 드리리다.     


눈에 보이는 게 오직 검푸른 바다와 푸른빛 도는 별뿐일 때면 마음은 더없이 막막해져서 도 모르게 울게 된다오. 내 신세를 한탄해서도 아니고 외로워서도 아니라오. 바다와 하늘에 대한 경외때문은 더욱 아니오. 크게는 늘 하잘것없다고 생각한 이 몸뚱이 하나의 견뎌냄이 스스로 대견해서고 숱하게 넘고 지나쳐온 파도 같은 시간이 안타까워서고 작게는 배가 적도를 지나는 밤의 꿈에 본 뭍의 마누라와 자식 놈이 보고자퍼서요.      


나 같은 인생에게 회한은 사치스러운 감정이오. 회한을 품은 인생은 일생을 두고 가고자 한 길이 있었다는 것 아니겠소? 그 길을 가지 못함에 드는 생각 아니겠소? 하지만 나는 애초에 가고자 한 길이 없었소. 그냥 지나왔소. 하루하루를 그냥 시간의 흐름을 타고 생각 없이 바다바람에 비 퍼붓듯 모진 풍상 옆에 끼고 지나왔다오.


모진 풍상을 겪어왔지만 어떤 목표를 두고 겪은 풍상이 아니었기에 내겐  아무 의미 없는 풍상이었던 거요. 그러니 나 같은 인생은 살아온 생을 후회할 자격조차 없는 인생이오. 내 앞에서 회한에 눈물짓는 당신이 한없이 부럽소. 이게 인생의 아이러니 아니겠소?            


내가 살아오면서 남에게 해를 끼친 일은 없었소. 크게 남을 위해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나만을 위해 살지도 않았다오. 숱하게 친구 만나고 헤어지며 가족 보살피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일에 익숙했지만 부러 그 일을 의미 있는 생과 연결해 생각하며 살지는 못했다오.


어이해 다시 눈시울 붉히시오? 조린 생선 앞에 놓고 출렁이는 컨테이너선 귀퉁이에 옹삭하게 앉아 푸른 달 바라보며 보드카 한잔 들이켜니 울컥 올라오는 감동때문이요? 슬픔이 복받쳐서요? 그 누가 그리워서요? 그 푸진 감정 나한테 한번 분양해보시오.


이 배에 오른 날 선장에게 당신이 그랬잖소? 시인은 온갖 사람과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라고. 언뜻 흘려들었지만 내내 그 말이 내 귓전을 맴돌았다오. 다른 사람과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업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 내겐 생경하고 더불어 그 업을 밥줄로 삼는 사람의 작업을 들여다보고 싶어졌다오.


하여 나는 당신의 그 의미부여 작업을, 시 쓰는 법을 배워보려 하는 거요. 그 작업이 내 진짜 인생의 배를 진북의 북극성을 좌표로 항해하게 하는 실마리라도 될 것 같아서 당신에게 이 무례하기만 한 부탁을 늘어놓고 있는 거요. 당초에 가당치도 않은 욕심을 낸 것 아닌지 모르겠소. 이것도 그 업계의 영업비밀인지 노하우인지 모르겠지만 시인은 그런 세속의 셈법을 벗어난 사람일 것 같아서 하는 얘기요.


함께 나누자니 고맙고 또 고맙소. 이 순간이 내 생의 개벽의 순간일지도 모르겠소.


하지만, 무엇을 안다고  그것을 온전히 남에게 다 전수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너무 애쓰지 마시오. 그것은 수레 장수가 바퀴 만드는 비결을 그의 자식에게도 완벽히 전수해 주지 못함과 다름 아닐 거요. 그리고 아무리 애써 가르쳐주려 해도 내 천품이 그 배움을 담을 그릇이 되지 못할 것 같으니 당신이 헛수고할까 두렵기도 하오.  나 또한 내 그릇을 알기에 너무 애쓰지 않을 것이오.


나는 언감생심 당신이 구사하는 언어의 기술을 익히기를 바라지 않소. 단지 당신과 보내는 보름 남짓의 시간에 시의  작법 딱 한 가지를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오. 이게 내 인생 헛된 꿈이라 해도 꿈 한번 제대로 가져보는 거요. 그것만으로 내겐 축복이오. 앞으로 이어질 태평양 항해 동안 시 한 편 지을 수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소. 거기에 덤이라면 어느 날 문득 당신이 뱃머리에서 내게 던지는 말 한마디가 선승이 던지는 화두처럼 내게 꽂히는 날이 있을지 누가 아오?


이제 눈물이 대충 가시었소? 술 한잔 더 받으시오. 내가 건네는 이 잔에 폭풍 치고 뒤숭숭하기만 했던 내 인생이 녹아있소. 쓰디쓰기만 할지 모르겠소. 쭉 들이켜보시오. 남의 인생이 담긴 술보다 더 사람을 적시는 술은 없다오.  자 이제 당신 인생의 기쁨과 슬픔과 회한이 담긴 술잔을 내게 넘겨주오. 내 그 술을 원료 삼아 어설픈 사설 한 편 펼쳐보리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하철의 화장하는 여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