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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Oct 07. 2018

_object module의 비전

그게 뭐라고 그리 중요하더냐

장기적 목표보다 더 먼 미래를 향해있는 것이 기업의 비전이다보니 다소 추상적이고 뜬 구름 잡는 느낌이고, 어쩔 땐 하나마나 한 좋은 이야기로 비추는 적이 많은 것 같다. 어린 창업자에겐 매력적이고 혹하는 이야기 선상에서 그치기 십상이고 말이다. 한 때는 그런 이야기가 실질적으로 하는 역할이 있는가 회의가 들어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취업 경험이 없는 창업자 친구들한테 '시험삼아 여러 회사에 취업 준비를 해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사람을 뽑으려면 사람 뽑는 과정을 벤치마킹해 보는 것도 도움이 꽤 되기 때문인데, 내게는 그 과정이 '기업에 비전이 왜 필요한가'하는 고민에 답을 찾는 데에 길잡이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여러 회사의 인재상, 그 전제의 비전을 둘러보다 보니 기업 간에 지향점과 조직 분위기의 차이가 느껴졌다. 다 비슷비슷한 좋은 단어 같이 보이는 키워드들 중에도 각 회사가 모아놓은 3~5개의 조합에는 연결관계와 이유가 있다. 그들 비즈니스 모델의 형태나 앞으로 중장기적으로 나아갈 전략 방향을 담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비전은 내외부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메시지에 해당한다. 따라서 브랜딩의 기저에는 해당 비즈니스의 비전이 깔린다. 비전은 브랜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의사결정 시 가치기준으로서 역할을 한다. 업의 수행 과정 중에 무수히 많은 의사결정 사안에 관해 선택 가능한 무수히 많은 옵션들을 두고 평가가 이루어진다. 이 때 비전은 불연속적인 의사결정들이 같은 지향점을 향하도록 하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또한 이를 기준으로 의사결정 결과에 대한 평가도 가능하다. 단기적 이벤트의 가치를 누적 평가하고 업의 방향을 제어하는 기준점이 있느냐 없느냐는 기업의 장기적 역량에 차이를 가져온다.


오브젝트 모듈의 비전은 세 가지 기준으로 세웠다. 첫째, 현대의 가치기준으로 보았을 때 기업이 오래 막연히 추구하기에 보다 나은가. 둘째,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주제인가. 셋째, 좋은 영향을 넓은 범위에 미칠 수 있는 행위인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몰두된 일이 그저 즐거워서 꾸준하고 성실하게 임했을 뿐인데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문제없이 많은 사람과 시스템을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이끈다면, 상당히 축복받은 업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방향을 지향한다면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고 고집스럽게 리더쉽을 주장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우리의 비전은 다음의 세 가지;


•Guilt-free fashion: 양심적 패션은 패션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의식함으로써 죄책감 없이 패션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의지를 표명한다. 우선 제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입장에서 환경에 유해한 영향을 끼치는 재료나 생산공정의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제품을 선택한 소비자가 과소비로 인해 의류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도록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고 제안할 것이다.

•Community-based personalization: 두번째 단계로 고객들이 제품을 자신의 취향에 맞도록 개인화하고 개성을 표출하여 타인과 차별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것이다. 오픈소스(Open-Source) 철학에 따라 손쉬운 제품 커스터마이징 방법을 제공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디자인 아이디어를 공유함으로써 제품의 다양한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이는 구매한 제품에 대한 심리적 내구성(emotional durability)을 향상시켜 제품 사용 기간을 늘리는 데에 기여할 것이라 기대한다.

•Algorithmic design: 알고리즘을 통한 의복 디자인은 소비자 정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각 정보를 활용하여 디자인 룰을 정립함으로써 기존의 방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의복 형태를 창조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디자인의 예술성을 향상시키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제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다.


이 중 어느 것도 제대로 형체를 갖추지 못한 채 부끄럽게 도망칠 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생각은 늘 한다. 안 되는 것을 확인하는 데에 생애 전부를 바칠런 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항상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치광이 예술가처럼 과학자처럼. 창조는 세상의 가능한 옵션 풀을 한 소쿰 넓히는 데에 이미 충분한 존재 이유가 있다는 위안으로 자꾸만 떠들어 본다. 매일 내 자신에게 세뇌하던 그 이야기를 이제 공공연하게 떠들어 보자고.


이런 비전, 같이 하실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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