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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크킴 Lake Kim Dec 14. 2021

무덤에 관한 고찰

최초의 플라스틱 칫솔은 아직 썩지 않았다. 마릴린 먼로와 히틀러의 칫솔은 여전히 어느 바닥에 묻혀 있다. 양치를 할 때마다 그들의 칫솔과 세상의 수많은 칫솔이 떠오른다. 내가 죽은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여전히 윤기나는 작은 막대기들. 다시는 새로운 주인을 만날 수 없고 그저 그 상태로 있다 사라질 고립된 무엇. 쓰임을 잃은 플라스틱 칫솔들의 무덤을 상상해본다.



얼마 전 페루에서 18세에서 22세로 추정되는 남자의 미라가 발견되었다. 밧줄로 꽁꽁 묶인 남자는 서기 800~1200년 경 기니피그 그리고 개와 함께 지하 1.4m 깊이에 위치한 묘실에 묻혔다. 산 채로 제물이 되어 묻힌 거겠지. 슬픔과 억울함 속에서 홀로 사그라들었을 그의 숨과 그 무덤을 그려본다. 



언젠가 경주에서 보았던 언덕들. 배불뚝이처럼 높이 솟은 무덤을 보니 왠지 부끄러웠다. 왕들은 평생 주목 받는 자리에 있었기에 멀리서 봐도 봉긋하게 솟아오른 무덤이 자신의 마땅한 최후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나는 아무래도 집채만한 무덤은 남사스러워서 내가 아무리 돈과 명예와 권력을 갖게 된다 하여도 저렇게 도드라지는 무덤은 만들지 말아달라고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늪에 빠진 진주는 아무도 그것이 진주인지 알아봐주지 않는다. 정교한 가짜 진주 사이에 숨어있는 진짜 진주는 어쩔 수 없이 의심을 받게 된다. 가짜 진주가 판 치는 세상에서는 진짜 진주목걸이를 해도 아무도 그것을 믿어주지 않는다. 결국엔 아무도 비싼 값을 주고 진짜 진주를 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진실은 거짓 속에서 죽는다. 진실이라 하여도 빛을 보지 못 한 채.



도살장으로 잡혀가는 소는 눈물을 흘렸다. 어떤 소의 아기였을 소. 어떤 소의 어미였을 소. 평생 쇠로 만든 틀에 갇혀 살다 처참히 잡아먹힐 자식을 낳는 마음이란. 무섭게도 그 소들의 무덤은 내 입이 되었다. 지구 상의 어떤 생물들은 인간의 입에서 결말지어진다.



제각기 다른 사인(死因)과 죽은 것들의 무덤. 나는 얼마나 살아 있고 얼마나 죽어 있는지, 나는 어떤 죽음과 무덤을 기대할 수 있을지, 그 사람들 혹은 그것들과 얼마나 다른지 아직은 짐작할 수 없다. 






* 자살징후아님 *죽을 생각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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