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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크킴 Lake Kim Dec 07. 2021

악착같이 잘 먹고 잘 살기

사무실에서 화를 내고 울고 욕하고 싶었던 마음들을 모두 모아 붙들어매고 허겁지겁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내가 한 일은 바로 요리. 아무도 나를 위해주지 않은 날이면 오로지 나만을 위한 요리가 더 간절해진다.


일이 힘들다기보다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감에 쩐 마음을 추스리는 일이 매번 더 힘들어서 갖가지 방법을 찾던 중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괜히 주륵주륵 눈물이 흐르는데 잘못한 것도 없이 우는 것도 싫고, 괜히 지는 기분이고, 지기는 싫고, 그렇다고 이겨먹을 수는 없는 현실이어서, 나름대로 평화로운 해결방안을 찾은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굉장히 어른스럽고 성숙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은 또 그렇지가 않다. 요리가 아니라 차라리 독극물을 만들어서 나를 서럽게 한 사람들한테 먹이고 싶을 때도 있고, 그 사람들이 문지방에 걸려 넘어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하고, 자주 배탈이 났으면 좋겠고, 저 멀리 초록불로 바뀐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전력질주를 했지만 건너려는 순간 빨간불로 바뀌어서 괜히 힘만 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퇴근하고 맛있게 한 끼 차려먹으려고 했는데 쌀도 없고 햇반도 없어서 배달음식을 주문했지만 배달 피크 시간이라 시키는 족족 취소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빌었을 저주라고는 생각지도 못 할 만큼 아주 작은 불행이 따르길 빌면서 후라이팬을 달구고 쪽파를 썬다. 그렇게 몇 번 썰고 익히고 데치다 보면 내 속을 지지고 볶던 잡념이 어느새 사라져있다.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먹다보면 웃기게도 또 나를 힘들게 한 그 사람들이 생각나 화가 치솟는다. 아직 소인배인게다. 어디선가 저녁 식사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들이 환경호르몬이 가득한 음식을 먹다가 사소한 이유로 밥상머리에서 싸움이 났으면 하고 반면 나는 더 악착같이 꼭꼭 씹고 음미하며 잘 먹고 잘 살려고 한다. 남한테 상처를 주면서까지 아등바등 자기 이득을 챙기며 살아봤자 건강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인생의 참맛을 보여주고 싶다. 나의 모든 육체와 삶으로 말이다. 


실명을 거론할 수 없는 나에게만큼은 결코 선하지 않았던 무수한 아무개씨들 덕에 인생의 질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고 있는 요즘이다. 너네가 그래봤자 나한테는 타격이 없고 나는 너네들처럼 남한테 피해 주지 않고도 그런 너네들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잘 산다, 그것도 오래오래, 30년이고 50년이고 100년이고 살아남아서 TV에 나와서 "걔네들? 다 떠났어." 하면서 미소 한 방 날릴거다 하고 건전한 정신승리를 해낸다. 정신승리도 자꾸 하니까 정신승리를 하기가 점점 수월해지고 매사에 긍정적여진다. 정신력이 강해져서 좋다. 이제 아무도 나를 못 건든다. 화나게 해봤자 요리한다고 가버리고 잘 살아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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