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조 Oct 22. 2024

나의 팀장님


사람이 보험이다.22

나의 팀장님



요즘 보험사에 영업 스킬을 컨설팅하고 있다. 기존에 ‘보험금 찾아주기’가 아닌 구체적이고 명확한 셀링포인트를 짚어내는 방법을 가르치고 구현해 내려 한다. 담장 밖에서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듣는 것이 아닌 그들의 영업에 치밀하게 다가가 들여다보면서 내가 보험설계사에 그치고 팀장은 안 해봤기에 못 느껴봤던 욕심, 동시에 절망과 희망을 느낀다. 아무리 좋은 것을 손에 쥐어주어도 본인이 사용하지 않으면 어떤 무기도 무용지물이거늘 손에 명검을 쥐어주었는 데도 그걸 들고만 있고 사용하지 않아서 처참하게 적에게 당하고 들어오는 병사들을 보는 전장의 리더가 된 기분. 새로 만나는 병사는 다르기를 바라며 처음부터 다시 신무기를 쥐어주고 사용법을 가르쳐 본다.


11월이면 내가 보험업계에 발을 들인 지 정확히 18년이 된다. 20년 가까운 시간 나는 ‘보험기간, 보험금, 보험료’를 얘기하면서 살았다. 요즘 들어 나에게 처음 보험료와 보험금을 구분하도록 가르쳐준 나의 첫 팀장이 생각난다. 그는 나를 영입하여 팀장이 되기 전에 설계사로서 매우 영광스러운 업적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의 사진을 코팅해서 보관하는 여사원이 있을 정도로 외모도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의 담당 설계사였고 막연히 그가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그런 멋진 사람이 같이 일을 하자고 하니 그 일은 무조건 멋진 일일 것이라 생각하고 직무설명회를 듣고 입사를 결정했다. 나는 그저, 나한테 멋진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믿었고 행복할 따름이었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영업이라는 것도 모르고 입사를 결정했다.


입사한 나는 생전 처음 생긴 내 자리가 너무 좋았다. 공인인증서도 입사해서 처음 만들 정도로 세상물정 몰랐던 나에게 한 달간의 신입교육은 너무너무 재미있고 모든 것이 신기했다. 입사 동기들은 영업코드가 나온 첫날부터 사무실에서 보이지 않았고 나는 설계프로그램에 내 나이와 이름을 입력해서 이것저것 설계해 보는 것도 게임처럼 즐거웠다.


그때 우리 팀장은 당시 어땠는지 기억을 더듬어본다. 당시 7년째 팀장과 함께 일하고 있던 팀장의 비서가 “이현조, 어쩔 거예요?” 하면서 팀장을 계속 다그치는 걸 나는 여러 번 보았다. 팀장은 나에게 왜 사무실에 계속 있는지 물었다. 팀장은 그저 해맑게 사람을 좋아하는 나를 걱정하고 한숨 쉬었다.


나는 그 팀 비서가 왜 그러는지 눈치가 보이고 불편했고, 내가 사무실에 있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보험에 대해 1도 모르는 내가 사무실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나는 영업의 제1조건인 친화력(지금은 다르게 생각함)을 가진 사람이었고 심지어 오가는 출퇴근 버스 안에서도 사람을 사귀어내는 나였는데 왜 걱정하는지 뭐가 문제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안다. 팀장이 뭘 걱정했는지, 비서까지 걱정할 정도의 문제가 뭐였는지. 나의 첫 팀장은 그 시절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아직도 거론하는 대단하고 인상 깊은 캐릭터였는데 그런 그가 자기만큼 특이하면서 무지하기까지한 나를 만나서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을까? 나는 그때로부터 많은 사람을 겪고서야 내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 특이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고 내 특이점들을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특성으로 만들어내기까지 엄청난 고생하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은 나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고 그 특성을 드러내도 되는 환경을 내가 만들었고, 그 특성을 특장점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되기 오래전에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나를 감당했던 그는 1년 반 정도의 시간을 일하다가 다른 회사로 떠났다. 함께 있는 동안 엄청나게 싸웠고 미워했고 함께 분노하기도 했었다. 그를 엄청나게 따르고 의지했던 내가 그를 따라 떠나지 않은 것을 두고 주변에서는 내가 그를 배신했다고 하며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그가 좋다고 해서 들어온 회사를 떠나자는 그의 말이 나의 믿음에 대한 배신이었는데 주변의 입장은 달랐다. 남겨진 나를 피곤하고 배신한 팀원으로 생각해서 팀장급들은 나를 반기지 않았고 이후 나는 보험사를 떠날 때까지 팀장들과 갈등을 겪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나를 두고 떠난 그를 항상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그리워했었던 것 같다.


보험영업을 했던 70차월 중 18차월(?) 정도만 함께 했었던 그였는데 시간이 오래 지나 내 속을 탈탈 털어보니 그의 첫 팀원이었던 나에 대한 그의 진심과 그의 시행착오 모든 것이 소중했다는 것을 나는 그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고 다른 팀장의 다듬어진 업무 방식을 싱겁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의 기준은 항상 내가 미워했던 그였다. 손해사정법인을 운영하는 지금도 가끔,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친해지는 것과 영업은 달라요.”, “좋은 사람 되고 싶어? 돈 벌고 싶어?”


영업은 신처럼 잘했지만, 자신의 개인사는 언제나 엉켜있고 복잡해서 안쓰러웠던 팀장님. 그러면서 언제나 스타일 구겨지는 것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세련되고 잘생긴 우리 팀장님. 지금도 금융업계에서 잘나가고 있다던데 18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많은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했으려나. 이제는 만나면 말 좀 따뜻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있으려나.


아니, 이제는 내가 따뜻하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18년 전의 나를 만나서 감당해 줘서 고마웠다고. 우당탕탕 어설픈 우리 모두의 시간에 감사하다고. 한 번쯤은 꼭 만나고 싶은 소중한 인연이라 생각한다 전하고 싶다. 철이 든 나를 보여주고 싶다.


당신의 첫 팀장에 대한 기억은 어떤가? 혹시 현재 당신의 첫 팀장과 함께인가? 처음인 당신을 감당하는 그 사람은 결국은 감사한 사람일 것이라 확언해 본다. 그러니 지금부터 감사하면 어떨까? 아니, 그건 현실적으로 어려울지도. 그저 지금 조금이라도 좋은 것이 있다면 그 좋음을 온전히 놓치지 않고 누리기를 권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어제, 오늘 그리고 이어지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