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노예무역상들은 아프리카 내륙 각지에서 데려온 이들을 먹을 것 하나 제공하지 않고 지하에 이틀 동안 가둬둔다. 열악한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체력에 대한 테스트였다고 한다. 지금은 관광객을 위해 실내등이 달려있지만 노예무역이 이루어지던 당시에는 오로지 벽에 난 작은 틈에서 비춰지는 빛이 전부였다. 그리고 썰물때가 되면 바닥에 바딧물이 차고 화장실을 따로 갖추고 있을 리 없는 지하실은 오물의 악취가 가득했을 것이다.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각종 질병으로 수많은 이들이 노예로 팔려가기도 전 사망했다.
저 조그만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전부였을..
이렇게 체력테스트를 빙자한 인권 침해와 정신적/육체적 학대를 견뎌낸 이들은 경매장으로 끌려간다. 넓은 공터 중앙 큰 나무에 묶여 채찍질을 당하며 울지 않는 이들은 높은 가격에, 울음을 참지 못하는 이들은 낮은 가격에 팔린다. 이유없이 채찍질을 당하기 위해 묶여 있던 그 나무가 있던 자리는 노예제도가 폐지된 후 교회가 세워졌다. 노예제 폐지에 앞장섰던 리빙스턴 박사가 죽고난 후, 그의 심장은 아프리카 땅에 그리고 시신은 고국인 영국에 묻혔다.
4세기 동안 노예제가 계속되었던 이 땅. 200년은 포르투갈에 의해 또 다른 200년은 아랍에 의해. 현지 가이드는 400년이라는 숫자를 되풀이하며 강조했다.
유발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다른 호모(인류)를 집단살해해 멸종시켰고 그리고 남은 유일한 호모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 재미있게 본 다큐멘터리에서는 15세기까지 세계의 경제, 과학기술, 군사, 문화의 중심이었던 것은 동아시아였고 그리고 유럽이 이를 무너뜨리고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총기"였다고 한다. 호모(인류)라는 종이 생태계의 최고 권력자로 등극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래서 서서히 그 자리를 차지했던 이전 권력자들에 비해 더욱 난폭하고 잔인한 방식으로 다른 종을 통제한다. 맹수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적인"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어쩌면 인류에게는 평화와 관용, 공존보다는 전쟁과 갈등, 경쟁이 더욱 자연스럽고 빠른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의지'라는 것이 있다. 초인. 니체가 말한 초인은 영어로 superman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초능력을 가진 슈퍼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제약이 없고 약점이 없는 존재가 아닌, 제약과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를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 쉽고 빠른 길보다는 어렵고 느리더라도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수 있는. 노예무역이라는 뼈아픈 과거를 가졌던, 그렇지만 이를 바로잡기도 했던.
모래시계의 작가는 "과거의 일들이 시간과 장소, 그리고 형태만 조금씩 바뀌어 반복된다"는 의미에서 드라마의 제목을 모래시계라 붙였다 했다. 같은 본질을 가지고 형태를 바꾸어 일어나는 수많은 인간의 일들. 다른 결과를 위해 과거를 곱씹고 반성하고 어려운 길로 가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휴가의 끝, 인류의 역사는 결국 나와 같은 개인의 일들이 모여 생기는 것. 휴가 오기 전 전반전보다는 더 나은 후반전을 기약하며. 잔지바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