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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in Wonderland Apr 15. 2022

안녕, 스물다섯 스물하나.

늦었지만 결혼 축하해

"그리고 늦었지만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에게도 그런 기억들이 있었다.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갔다가 3개월만에 다시 다니던 학교로 돌아올 정도로 우정이 전부였던 학창시절이 있다. 백이진과 나희도 만큼의 서사가 쌓였는지 알 수 없지만 결혼이라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은 연애가 있다. 그리고 몇년 후, 매체와 뉴스를 통해서는 아니지만, 결혼 소식을 듣고 이미 한참 전에 끝나버린 인연이었지만 다시 한 번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던 때도 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까지 드라마 속 희도처럼 서로에게 상처만 잔뜩 남긴 이별의 순간은 후회로 남았다. 어쩌면 조금씩 다른 이야기와 에피소드들로 채워져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스물다섯 스물하나 속 풋풋하지만 미숙하고 그래서 더 애틋하게 끝나버린 기억이 하나쯤은 다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는 어쩌면 이런 현실을 있는 그대로 여지없이 보여줬다. 극적 드라마가 주는 카타르시스를 원했던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울 결론. 이제는 조금 잠잠해진듯하지만 마지막회가 방영되고 한동안 인스타와 네이버를 보면 결말을 재구성한 피드가 여럿 올라올 정도로 사람들이 원했던 결말은희도와 이진이 역경을 이기고 함께하는 드라마적 엔딩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 드라마의 다소 씁쓸한 현실같은 결말을 통해 얻은 위안과 위로는 나의 치열했던 우정과 연애가 지금까지 지속되지 않는대도 그 순간들의 반짝임과 찬란함이 헛되거나 아무 의미없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다시 돌아왔던 학교에서 우정을 쌓았던 그 친구들 중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이 닿는 친구는 없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을 성실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친애하는 우리의 뜨겁고 철없던 우정이 보내준 응원과 격려가 분명 다리가 되고 계단이 되어 오늘을 만들어줬음을 안다. 한국과 영국, 프랑스, 그리고 중국까지. 비행기를 타고 버스와 기차를 타고 함께한 그 시절의 순수했던 사랑과 애정이 나를 철들게하고 단단하게 했고, 그 힘에 기대어 나는 지금의 나로 이 곳에 설 수 있음을 안다.


희도는 은퇴 후, 이진의 권유로 처음 시작했던 목공방을 한다. 서로의 사랑이 더 이상 응원이 되지 않아 이별을 택했지만 UBS의 간판 앵커가 된 이진과 올림픽 3연승 금메달리스트가 된 희도는 여전히 서로의 꿈을 응원한다. 그 여름 친구들과 함께 떠난 수학여행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희도지만, 사랑하는 딸 민채 역영원할 순 없어도 그 이후의 삶에 잔잔한 위로와 격려로 영원히 남게될 청춘의 여름같이 뜨겁고 순수한 순간들을 경험하며 살기를 바란다. '우리'는 영원할 수 없어도,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응원과 위로'의 힘은 감히 영원하다. 그러니 '우리'가 지속되느냐 끝이났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였을 때 우리가 만들어낸 힘이다.


"함부로 영원을 이야기했던 순간들.

지나고 보면 모든 게 연습이었던 날들.

나는 그 착각이 참 좋았다."


"우리 한국가면 어디부터 가야되려나?"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청춘의 한복판을 걷는 중인 그 친구에게 한국에 돌아가서 모두가 함께 만나는 것은 그저 당연한 일이다. 그 말에 나는 대답 대신 혼자 조용히 미소지었다. 18년 전, 영국 연수를 마치고 송별회를 하며 당시 우리 모임의 정신적 지주이자 연장자에게 했던 나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늘 친구가 홍대 맛집을 소개해줬는데, 우리 한국가서 여기 다같이 가요." 그 때 그 분은 약간의 씁쓸함섞인 웃음과 함께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지금 여기있는 8명이 다 나오면, 내가 인터콘티넨탈 호텔 뷔페를 쏠게." 그 때 나는 코웃음을 치며 얘기했다. "호텔 뷔페! 두둑하게 준비하셔야겠는데요?" 당시 모두 취준생이었던 우리에게 호텔뷔페는 카드게임에서 '올인'과도 같은 배팅이었다. 그리고 그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이제는 안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지금의 우리가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아무리 뜨거워도 현실의 무게와 바쁨에 치여 언젠가 서서히 조금씩 사그라들것임을, 함부로 영원할 거라 장담할 수 없음을, 기대를 걸어보고 싶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임을 다.


희도와 이진의 헤어짐으로 로맨스물로서는 새드엔딩이었지만, 이 결말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해피엔딩을 안겨준 것은 아닐까. 당신의 추억과 기억 속의 이제는 희미해져버렸을지도 모르는 그 사랑과 우정이 지금 영원히 당신 곁에 없다해도 괜찮다고. 영원을 함부로 얘기하던 그때가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있었다고. 그 시절의 헤어짐은 실패가 아니라 그저 연습이었다고. 그리고 그런 연습이던 시간을 통해 지금의 당신이 그리고 내가 있다고. 그리고 더 이상 영원을 믿지못하는 우리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 시절의 우정과 사랑이 준 응원과 위로는 그 시간을 빛내주었고 그 빛남은 영원히 어딘가에 남아서 나의 오늘에 길을 내어 주었다고.


그럼에도 한가지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것은 미성숙했던 이별의 순간. 그 시절 내게 누구보다 중요했던 사람과의 마지막 순간이 그렇게 끝나서는 안됐다. 이도와 희진처럼 서로를 향해 달려가 애틋한 포옹을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서로를 향해 상처가 될 날선 말을 하는 것이 마지막이 되어서는 안됐다. 그리고 대립되어 상처를 주는 말들은 한 번에 마무리되지 않고 몇번이고 되풀이되었다. 끝이 나버린 후, 오랫동안 여운인지 미련일지 모를 감정이 더욱 오래 지속되었던 것도 그 미성숙한 이별의 기억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지막에 추가된 희도의 상상 속에서나마 고쳐진 이별의 순간이 더 애틋한지도 모르겠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새로운 변화를 앞두고 고요하고 담담한듯 그러나 또 남모르게 맘속으로 요동치던 늦겨울과 2022년 초봄을 함께했다. 드라마의 여운과 함께 나의 스물하나 그리고 스물다섯 그 시절 감정의 후회와 미련, 마음 한켠에 정리되지 않고 남아 부유하던 그 감정들도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늦었지만 결혼 축하해, 민."


덧. 끝까지 희도의 남편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남편이 등장했다면 이 드라마는 결국 희도의 남편찾기, 희도 개인의 연애물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을 철저히 숨김으로써 개인의 연애사를 넘어 꿈과 성장,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했다. 너무 어려워 오답을 내고 말았던 희도와 이진의 연애 그리고 그 현재는 전여친의 소식은 뉴스로 보겠다며 소주 한 잔 따르는 이진의 덤덤한 듯 쓸쓸한 장면 하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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