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어른이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많은 것은 나아졌다. 대학생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람들과의 안전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중고등학교처럼 한 개 교실에 다닥다닥 붙어 앉지 않아도 되고, 지정좌석도 아니었기 때문에 넓은 강의실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람들과 물리적인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또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수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위축되지 않는 친구들을 선택해서 원하는 친구들과만 다닐 수도 있었다. 가취도 가취에 대한 걱정도 자연스럽게 서서히 옅어져 갔다.
나는 비록 회피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회피하고 싶은 만큼 도전하고 싶은 것 또한 많았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일에서 '하고 싶어'와 '할 수 있을까?'를 갈등했지만 대부분 이기는 쪽은 '하고 싶어'였다. 나는 겁이 많았지만 쉽게 포기하는 편은 아니었고 그래서 언제나 하고 싶은 것을 결국 했다. 떠올려보면 나는 나에게 자주 말을 걸어왔던 것 같다. '일단 해보자'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 '불안하면 미리 준비하자' 무모하지만 용감한 나와의 대화는 내가 무엇이든 새로운 행동을 하는 것에 도움을 주었다.
사람들 앞에서 나서는 걸 두려워했던 나는 신입생 때 운동장에서 치어리더를 뽑는 자리에서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용감하게도) 손을 번쩍 들었다. 끼도 없고 키도 작고 팔다리도 짧아서 치어리더는 나랑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대학교 3년간 치어리더를 하며 친구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고, 조금씩 사람들 앞에 나를 드러내면서 변하고 있었다. 3년을 미루던 필수 교양 발표수업에서 발표 3등을 했던 경험도 모임의 리더 활동, 멘토링 활동을 했던 것들도 나를 도전하는 사람으로 인식을 바꾸며 성장시켰으며, 이로 인해 내 대학생활은 꽤 유익하고 즐거웠으며 의미 있었다.
하지만 대인관계에서 어딘가 외롭고 헛헛한 느낌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어딘가 항상 결핍된 느낌이었다. 친구들과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면 '너무 가까워.' 하는 경고음이 울리는 것 같았다. 나에게 분명 좋은 친구들은 있었지만 나는 친구들과 연결된 소속감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강의실에서 친구들은 모여 앉았지만 나는 일부러 늦게 들어가서 혼자 앉기도 했고 언제나 조금의 거리를 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대부분의 날들이 집에 가기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대인관계를 이유로 처음으로 상담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학생상담센터를 찾았다. 나는 당시 어려웠던 인간관계에 대해 상담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1,2,3회기.. 상담을 할수록 문제가 풀리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애매하고 복잡한 인간관계 구도를 설명하기에 바빴다. 어느 순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의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의 아픔이자 콤플렉스, 과거, 냄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