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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Dec 16. 2024

트리 대신 트리 접시

자취를 4년 반 했다. 20대 중반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즈음인데, 거의 배달음식을 먹지 않았다. 여자 혼자 사는 자취방이 노출되는 게 무서웠다. 지금보다 배달음식 문화가 덜하기도 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포장을 했다. 대부분 치킨이었다. 2구짜리 가스레인지에서 치킨은 내가 만들기는 어려운 음식이니까. 바꿔 말하면, 거의 내가 해 먹었다. 환기도 안 되는 그 조그마한 원룸에서 열심히도 해 먹었다.


문제는 그릇이었다. 일단 식탁이 없어서 여러 그릇을 놓을 자리가 없었다. 큰 접시에 반찬 조금조금을 놓아 먹는 게 싫었다. 싫은 것과 별개로 계속 그렇게 먹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시간도 없고 설거지도 줄인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그릇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내 그릇.  내 플레이팅.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그때즈음에 인스타그램이 태동했다. 밤을 새워서 다른 사람의 피드를 구경했다. #그릇스타그램 #온더테이블 #신혼밥상 태그를 무한 클릭했다. 질 좋은 리빙잡지를 무한대로 보는 느낌. 콘텐츠가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눈을 떴다. 코렐은 가라. 딱 결혼과 맞물렸다. 해외직구를 했다. 남편이 물었다. 디쨩아, 그릇 30만 원 치 샀다메. 근데 왜 그릇이 4개뿐이고? 자기야. 이거 엄청 싸게 산거다. 접시 4개에 30만 원이 어떻게 싼 건데. 자기야. 엄청 싼 거다.


명품백보다 무서운 게 그릇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여러 브랜드를 거쳐 결국 덴마크 도자기 브랜드에 안착했다. 한 개씩 한 개씩 야금야금 사다가 2인 한식기 세트를 샀을 때 선배에게 자랑했다. 할머니 그릇이야? 그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게 왜 예쁜 건지 모를 그릇이지. 취존 할게요. 그러니까 저도 취존 좀. ㅋㅋ 내 생일에 사고 아웃렛에서 사고 세일한다고 사고 그렇게 사들였다. 마지막 구매는 작년 여름. 좀 쉬었네. 인스타그램 피드에 사부지기 시즌 그릇들이 올라온다. 아직 내가 하나도 소장 못 한 크리스마스 라인 그릇이다.


일 년에 며칠 쓴다고 그냥 그거 말고 다른 라인 사지? 고민하는 나에게 남편이 넌지시 말을 얹는다. 저기여. 이거는 원래가 12월 한 달 쓰는 거거든여? 그렇게 쓰라고 나오는 거거든여? 지금 2개 살지 4개 살지 그것만 고민이거든여? 살지 말지는 고민이 아니거든여? 새침한 리본에 그릇 자체가 크리스마스 리스인, 떠먹을 음식이라고는 마녀수프뿐인, 그마저도 이미 12월은 절반이 지나가버린, 그럼에도 한 그릇 예쁘게 떠먹고 싶은, 스타플루티드가 나에게 왔다. 트리 살 돈으로 트리 그릇. 메리 크리스마스!


내눈에만 예뻐도 괜차나 ㅋㅋ 내가 쓰는거니까 ㅋㅋ @공식홈피 캡처


나의 그릇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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