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디짱 Jul 31. 2020

무늬 많은 그릇

딱 일주일 전에 그릇을 샀다. 마음도 허하고 몸도 허하고 돈도 허해서 평소 갖고싶었던걸 샀다. 원래 난 돈이궁할때 뭘 지르는 편이다. 왜냐면 풍족은 그 자체로 풍만함을 주니까. 인간은 빈곤할때 뭘 채워야 한다. 


그릇은 백화점 리빙관에서 샀다. 왠지 가격을 물어보면 사야될것 같은 분위기의 리빙관에 당당히 입성했다. 왜냐면 난 살꺼거든. 오늘 무조건 뭐든지 사고야 말거거든. 친절함으로 무장한 아줌마 직원이 그릇을 막 펼쳐보아도 난 부담스럽지 않았다. 왜냐면 나 살꺼란말이야. 


무늬가 많으면 많을수록 값이 더 나가는 그릇인데 아줌마 직원이 계속 나에게 무늬로 뒤덮인 그릇을 추천한다. 슬그머니 하얀 부분이 많은 것들로 눈을 돌리는 나에게 계속 덴마크 장인이 한땀한땀 그린 무늬를 들이민다. 보면 볼수록 빠져든다. 보면 볼수록 예쁘다. 


아줌마 직원은 십년 넘게 이 브랜드에서 일했다 했다. 이 브랜드에서는 직원에게 1년에 2개씩 갖고싶은 그릇을 선물로 준다는데 아줌마 직원은 그걸 야금야금 모았댔다. 남편이 매장서 하루종일 보고 집에서 또봐도 안질리냐고 물어서 이게 어떻게 질릴수 있냐고 반문했다 했다. 그러면서 "그릇 좋아하는 사람은 그릇 좋아하는사람을 알아보지요" 하며 "고객님도 저 같은 분인걸 알아봤어요"라고 했다.


그릇을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볼만큼 그릇에 빠져 그릇을 파는 아줌마 직원의 프로정신에 감복하여 카드를 긁는 순간 역시나 내 깊은 곳 쫌생이 마인드는 버리질 못해 아줌마 직원에게물어보았다. "이거 세일은 안하죠?" 아줌마 직원은 호언장담했다. "고객님 무늬많은건 세일 안해요. 저 믿으세요." 


딱 일주일전에 그릇을 샀다. 그리고 오늘 그 브랜드에서 문자가 왔다. 바겐세일 전품목 10% 할인(6/26금요일~7/12일요일) 자세한 내용은 매장으로 문의해주세요. 여보세요 아지매요 무늬많은건 세일 안한다매요? 아지매요 무늬 문의좀 하께요? 아지매요 그릇 좋아하는 사람끼리 알아본다메요? 아지매요....아..... 


그렇게 나의 호구력에 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새벽 세시반까지 인스타에서 남의집 그릇 구경하다가 결국 그릇은 병행수입이 짱이지 하며 또 그릇 하나를 더 삿다는 훈훈한 마무리. 아지매한테 뒤통수는 맞앗어도 그릇은 미워하지말자는 나의 굳은 심지, 쉽게 이 브랜드를 손절하지 않겠다는 나의 굳센 의지, 하나 살 돈으로 두개사서 풀 세트를 완성시켜보겠다는 나의 굳건한 다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