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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Aug 12. 2024

이제는 끝내야 하나, 일본여행

첫 해외여행, 첫 친구여행, 첫 해외출장, 첫 혼자여행. 첫 모녀여행. 첫 아기와 여행. 나의 일본여행에는 '첫'이 담겨있었다.


첫 해외여행은 구마모토였다. 외할아버지가 속한 클럽에서 보내주셨다. 대학교 1학년때였는데, 동행한 이들도 다 대학생이었다. 숙명여대 다니는 언니가 배 갑판에서 담배를 피우는 걸 보고 충격 먹었다. 담배 피우는 여자를 처음 봤다. 멋진데ㅋㅋㅋ 나 빼고는 다 대학 봉사 동아리클럽에서 선별된 이들이었다. 해단식을 하고 서면에서 술을 먹는데 어떤 오빠가 그랬다. 소디야. 사실 나는 너를 싫어했다. 내 친구 자리 꿰차고 어떤 애가 이 기회를 잡는다는 게 불공평하다 생각했다. 니 잘못은 아니지만 미워해서 미안하다. 여행기간 내내 나에게 제일 잘해준 오빠였다. 그랬구나. 난 낙하산이었구나. 누군가를 밀어내고 특혜를 받았구나. 20살에 깨달은 불공정이었다.


대학교 2학년때는 처음으로 부모님 없이 친구와 오사카에 갔다. 엔화가 1600원이었다. 그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문창회관 2층 여행사에 가서 예약했다. 스카이스캐너도 몰랐다. 저희 하루 예산이 10만 원인데요, 그래서 방은 하루에 5만 원이 안 넘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가능했다. 열악했지만, 가능은 했다. 환산해 보면 진짜 싸구려 방이었다. 100엔 찍힌 사라사 펜을 몇 개 샀었다. 학교 앞 지성문구가 차라리 더 싼 줄도 모르고. ㅋㅋㅋ 알뜰살뜰 3박 4일을 보냈다. 어리바리 대학생들의 여행이었다.


첫 해외출장은 대학생 인턴 때였다. 팀이 6명 정도였는데 거기서 나는 완전 핫빠리였다. 나를 데리고 가준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당시 리더분이 나를 잘 봐주셔서 이런 경험도 해봐라~ 하고 데려가주신 듯하다. '일'로 간 일본은 빡빡 그 자체였다. 간담회 장의 커피잔 브랜드까지 정해야 했다. 분 단위로 쪼개지는 스케줄에 괜히 왔다 싶기도 했다. 그래도 어른의 일본을 느낄 수 있었다. 하카타역 뒤 조그만 이자까야에서 일 끝나고 먹은 생맥주는 아직도 그 맛이 기억난다.


첫 혼자여행은 후쿠오카, 첫 모녀여행은 삿뽀로, 첫 아기와의 여행은 후쿠오카. 부단히도 일본을 갔다. 인턴 시절 접한 일본인 직원의 영향이 컸다. 40대 후반 여성. 해당 회사와 후쿠오카에 있는 회사의 교환직원(?) 개념이었다. 그 차장님 덕분에 일본이라는 나라를 알게 됐고, 그녀가 떠난 뒤엔 일본어 학원에 등록했으며, 생존 일본어 정도는 가능하게 됐다. 일본 드라마, 일본 영화, 일본 음식, 일본 술. 궁금한 것이 많았고 직접 가 궁금한 것을 해결했다.


올해도 후쿠오카행이 예정돼 있었다. 작년에 아기와 갔을 때 행복했다. 비행기 1시간 거리로 그만큼의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곳이 또 있었나. 9월 초로 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난카이 대지진 경보가 떴다. 일본은 난리다. 일본여행카페도 쑥대밭이다. 취소 글이 줄잇는다. 그런 취소글에 분탕질도 줄잇는다. 홀몸이면 갔을 수도 있었을 여행이다. 나도 취소로 가닥을 잡는다. 환불 위약금이 쓰리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대응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뿐이다.


회사 선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일본을 가냐고. 가고 싶냐고. 역사를 잊었냐고. 아빠는 일제의 잔재가 남은 단어를 쓰는 것조차 극혐한다. 아리가또 라고 한마디만 해도 버럭 한다. 댓글엔 이번 광복절에 난카이 대지진이 일어난다면 그건 신의 뜻이라고도 한다. 나 또한 다시 가게 된다면 일신상의 아무 걸리적거리는 게 없을 때 아닐까. 열도가 숨죽인다. 대재앙을 기다린다.


꼬맹이랑 후쿠오카시동물원 다시 가고싶었는데 ㅠㅠ 대전동물원보다 가까운 이곳이 제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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