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일본여행은 취소했다. 난카이 대지진은 오지 않았다. 아 그냥 가? 가도 될 것 같지 않아? 의외의 결단력은 아기에게서 나왔다. 앙꼬야. 우리 일본 가기로 했었잖아. 응. 지진 때문에 안돼. 응? 앙꼬야 너 지진 알아? 지진이 뭔데? 응. 땅이 흔들흔들~ 대발이에 나오지. 어머어머. 그럼 지진 나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알아? 응. 운동장으로 뛰어가야지. 와. 내 마음이 흔들릴뻔했다. 내 아기가 영재인가 싶어서. ㅋㅋㅋ 어른들이 흘려서 했던 말들도 스폰지처럼 쏙쏙 빨아들이는 아기였다. 갈팡질팡하던 우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호텔과 항공권을 취소했다. 혹시나 가려나 하던 실낱같은 희망은 버렸다. 쓰라린 수수료 38만 원. 근심걱정을 덜은 비용치곤 싼 건가.
빠르게 대체지를 찾는다. 애당초 후쿠오카를 택한 이유가 비행기 1시간 때문이었다. 다낭, 푸꾸옥, 괌, 사이판, 마카오 다 탈락. 오키나와 당연히 탈락. 그냥 일주일 동안 아기는 등원시키고 우리 10-4 자유 즐기는 건 어때. 어머 솔깃한데. ㅋㅋ 포항이나 경주 갈까? 약해약해. 전라도 어떤데. 약해약해. 서울 어떤데. 약해약해. 그럼 결국 남은 건 제주도잖아. 자기 제주도 싫다고 했잖아. 거기서 일 많이 해서 싫다고 했잖아. 나는 좋아. 제주도 좋아. 그렇게 일사천리 제주도행이 확정됐다.
바가지요금 탓에 제주 인기가 시들해졌다지만 여전히 설레는 여행지다. 좋은 숙소가 많고, 맛있는 음식이 많고, 재미난 놀거리가 많다. 내 제주 여행 패턴은 가성비 말끔한 숙소, 호사스러운 음식, 힙한 카페와 빵집, 독립책방과 소품샵 구경, 호젓한 산책, 예쁜 쓰레기 쇼핑으로 일갈된다. 한마디로 아기와 하기엔 모든 게 힘들다. 가성비 말끔한 숙소는 좁은 호텔이나 2인 전용인 곳이 많고 호사스러운 음식과 힙한 카페는 키즈를 원하지 않는다. 눈 돌아가는 빵집은 아기와 줄을 서기에 마땅치 않고 수많은 독립책방과 소품샵은 아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작고 약한 부서질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산책? 50미터만 걸어가도 안아달라고 조를 텐데. 아놔, 제주도를 가는 게. 이게 맞나?
아기와 지내기에 편한 조금은 값이 나가는 호텔을 잡고 얕고 잔잔한 바다에서 모래놀이 할 준비를 한다. 멋진 식당은 부부가 번갈아 혼밥 하기로 하자. 반나절씩 자유를 준다면 더 좋겠지. 미디어 아트가 접목된 키즈카페, 양과 말이 뛰노는 목장, 혹시나 청귤 따기 체험도 가능할까. 네이버 지도에 마크해본다. 함께할 식당도 카페도 예스키즈존인지를 먼저 살핀다. 이 조건은 맛보다 우선될 수도. 제주시와 서귀포시 횡단은 없다. 그저 지도 위쪽에서만 알짱거리겠다. 당일치기도, 1박 2일도, 일주일 내내도. 수없이 갔던 제주도인데 왠지 생경한 제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