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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Jan 01. 2024

미국으로 시집간 나의 동생아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없는 건 딱 하나다. 동생이다. 목숨도 줄 수 있는데 이건 못 준다. 난 둘째 생각이 없다. 키울 생각도 키울 여력도 없다. 아이가 여러 명일 때 그 사랑은 나눠지는 게 아니라 곱절이 된다지만, 편애하지 않을 자신도 없다. 지금처럼 오롯이 한 아이에게만 모든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나의 부모는 나에게 두 명의 동생을 주었다. 3살 터울의 여동생, 9살 터울의 남동생이다. 청소년이 제일 싫어하는 게 홀수다. 편이 갈리니까. K-장녀인 나와 막내장남인 남동생은 엄마를 닮았다. 아래위로 끼인 여동생은 아빠를 닮았다. 어릴 땐 지독히 싸웠다. 여동생이 두꺼운 만화책인 '밍크'로 내 머리를 내려쳐서 내가 들고 있던 흰 우유를 확 부어버린 적도 있다. 편을 먹고 싸우기도 했다. 보통 2대 1이었다. 나와 남동생이 한 편이었다.


사고방식이 정반대인 부모 밑에서 우리는 각자 닮은 부모의 성정을 배웠다. 나와 남동생은 안정지향형, 여동생은 모험추구형이었다. 대학도, 직업도 성정을 따랐다. 여동생이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언니는 왜 서울로 이직 안 하는데? 나는 지금을 만족한다. 우물 안 박봉녀임에도 안정을 추구하기에. 수능을 망쳐도 그 점수대로 학교를 선택한 나다. 반면 똑같이 수능을 망쳐도 반수를 위해 ppt를 만들어 부모 앞에서 발표까지 한 여동생이다. 그래서 본인 분야 최고 학부, 대기업 코스를 밟고 집과 떨어져 14년을 산 여동생이다.


나는 이 사람이 나를 특이하다고 하지 않아서 좋아. 동생이 제부가 될 사람을 우리에게 소개했다. 언젠가 남편이 말했었다. 처제, 참 특이해. 왜? 그냥, 특이해. 남편이 처제를 무척이나 아끼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었다(실제로 내가 시동생에게 하는 거 백배로 내 동생에게 잘해준다). 동생의 구남친들도 동생에게 말했었다. 특이해. 그래서 재밌어. 그래서 좋아. 특이하다는 말의 레이어를 들추면 긍정일까, 부정일까. 특이하다는 말이 싫었던 동생은 본인과 같이 특이한 사람을 만난 걸까, 본인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난 걸까.


제부는 고등학교 때 온 가족이 미 서부로 이민을 갔다. 둘은 결혼으로 합쳐질 둘의 인생을 미국에서 시작하기로 정했다. 그리고 12월, 서울시청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아빠는 하객에게 제가 이런 곳에서 딸 결혼을 시키다니, 출세했지요라고 했다. 식장에서 펑펑 운 건 제부였다. 동생은 씩씩한 신부였다. 우리 가족 모두 울지 않았다. 엄마는 흘릴 눈물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미국에 가기로 결정하기 전부터 수도꼭지 그 자체였으니까.


동생이 멀리 떠나서 섭섭하지. 놀러 갈 곳 있어서 좋겠다. 00이 영어는 걱정 없겠어. 챗 gpt의 세상에서도 미국은 아직까지 머나먼 곳, 미지의 곳이다. 난 아직 뉴욕도 가보지 못했다. 섹스 앤 더 시티로만 희미하게 그려보는 게 전부다. LA아리랑의 기억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전부다. 야. 니는 낙곱새도 없는 미국에서 살고 싶나? 엄마 잡채 먹고 싶으면 어쩔래. 야. 니는 그 좋은 회사 다 버리고 떠나고 싶나? 야. 니는 가족들 안 보고 살 수 있냐고. 어? 그러고 싶나? 이 못된 가시나야. 진짜로 잘 먹고, 잘 살기만을 바란다. 정말로 행복하기만을 바란다. 어려움이 닥쳐도 잘 헤쳐나가면서. 힘들면 이 언니를 쪼금이라도 떠올리면서.


사랑하는 동생아 행복하게 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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