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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나무 May 04. 2024

오월의 운동회

모두에게 즐거운 운동회라야 지속가능하다

코로나가 안정화되면서 학교 행사도 예전 모습을 회복하고 있다. 우리 학교는 격년으로 학부모 초청 운동회와 학예회를 번갈아 하는 것으로 학교 교육과정이 계획되어 있다. 올해는 운동회가 있는 해이다. 요즘은 대개 학교들이 어린이날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오월의 운동회'를 여는 편이다. 학년별로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놀이와 경기 코너를 만들고 돌아가며 놀이와 경기에 참여하도록 구성하기도 한다. 우리 학교와 같은 전교생 200명 남짓의 소규모 학교는 부모님을 초대하여 가족과 함께 즐기는 운동회를 열기도 한다.


세월에 따라 운동회 모습도 변화하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 운동회는 '고된 연습의 시간'으로 기억된다. 9월,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운동회 준비에 들어갔다. 뙤약볕이 운동장을 뜨겁게 달구어도 여학생들은 '매스 게임'과 부채춤과 같은 단체 무용 연습을 했다. 남자아이들은 기마전 연습을 했다. 조금만 틀리기라도 하면 선생님께 호되게 야단을 맞으며 연습에 연습을 이어갔다. 끝도 없이 '다시, 다시' 외치는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연습하다 보면 지옥이 따로 없었다.(초임 교사시절, 운동회 무용 지도를 맡아서 생고생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선생님들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나고 보면 모두 추억이라고 하지만, 전체주의 색채가 농후한 일본식 운동회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비판적 시각이 많았다.    

 

이런 운동회 모습도 이제는 사라졌다. 정상적인 교육과정에 방해되지 않도록 운동회를 위한 별도의 연습을 하지 않는다. 반별 이어달리기 선수 선발을 위한 달리기 정도가 연습의 전부이다. 운동회 프로그램도 평소 체육수업이나 동아리 활동 등에서 경험했거나 간단한 시범만으로 따라 할 수 있는 경기와 놀이로 구성되어 연습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운동회를 대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보여주기식 운동회에서 벗어나 모두가 즐겁게 참여하고 즐기는 방식으로 변화된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학교는 계획된 교육과정에 따라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하게 배움의 스텝을 밟아가야 한다. 학년 초에 계획된 학교 교육과정에 따라 일상의 수업이 충실히 이루어질 때 학생들의 배움도 부자연스러운 단절 없이 안정적으로 한 계단 한 계단 걸음을 옮길 수 있다.


운동회 연습이 사라지게 된 데는 '이벤트 업체'의 등장도 한몫했다. 이벤트 업체에서 방송, 음향, 배경 음악, 다양하고 안전한 경기 도구를 준비하고 전체 경기 진행을 도맡아 주니 선생님들의 수고와 준비도 줄어든다. 학교는 아이들과 부모님을 위한 선물, 경기 일정과 프로그램을 안내하는 팸플릿, 생수, 만국기, 보건실과 화장실 등 학교 시설 이용 관련 안내 등을 준비하면 된다. 누군가의 즐거움을 위해 소수라도 희생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면, 글쎄, 다시 머리를 맞대어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수고와 노력 차원의 문제가 아니니 말이다. 어느 누구의 희생도 고통도 없는, 모두가 즐거운 운동회는 말 그대로 지속가능하다.                  


바람 좋고 햇살 밝은 오월, 학교 운동장은 아이들, 부모님, 선생님, 우리 모두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코로나 이후 학부모님을 초청한 대규모 행사인만큼 모두가 조금씩 긴장했고 들떠기도 했다.

바람결에 나부끼는 만국기 아래 학교 운동장을 가득 메운 빨강, 주황, 노랑, 연두, 파랑, 물색, 분홍 티셔츠 알록달록 차린 아이들이 싱그러운 오월,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한 사랑스러운 운동회날이 아이들과 부모님의 행복한 추억사진첩에 담겼기를 소망했다.  

   





운동회를 시작하며 학교장 인사말은 짧게, 모두가 즐거운 운동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전했다.

<학교장 인사말에 담긴 내용>
* 날씨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시작하기: 바람이 상쾌하여 기분 좋은 날
* 생명으로 넘쳐나는 오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되새기며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나래 놀이 한마당'을 열게 된 기쁨을 함께 나누기
* 운동회는 '운동을 하며 서로 더욱 친해지고 가까워지는 모임'이라는 뜻 함유.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 아이팀 나래팀으로 나눈 것은 경기를 더욱 재미있게 하기 위함이며 최종 우승자는 즐겁게 참여하며 경기를 즐긴 사람이라는 내용
* 경기 규칙과 질서를 잘 지키며, 1~6학년까지 서로 협력하고 응원하며, 한 명도 다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경기에 참여할 것을 당부
* 참석하신 부모님께 아이들이 '사랑합니다' 인사할 수 있도록 하기
* 아이들 인사에 이어 부모님과 인사 나누기: 바쁘신 가운데 아이들 운동회에 관심을 가지고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부모님을 위한 경기와 선물도 많이 준비했으니 즐겁게 참여하시고 행복한 추억도 많이 만드시기 바란다는 내용

          

변한 것도 있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운동회 식순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옛것을 그대로 이어 좋은 점은 아이들이 행사 진행의 일반적인 순서를 공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어린이 헌장을 낭독하고 들을 것이며, 언제 또 어린이날 노래를 배우고 부를 것인가. 모두 함께 한마음으로 손을 들어 선서하겠는가 말이다. 옛것이라고 무작정 고리타분하게 여길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세대를 뛰어넘는 '공통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세대를 잇고 연결하는 힘이 된다.     

    

국민체조도 마찬가지다. 나의 어린 날 40년 전의 운동회도 국민체조로 시작해서 국민체조로 끝났다. 익숙하고 정겨운 국민체조다. 어린 시절 추억이 되살아나는 국민체조 음악에 따라 우리 모두는 씩씩하게, 즐겁게 체조를 했다. 이 체조는 준비체조로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다. , 다리, , 어깨, 몸통 등의 근육을 풀어주기에 적합하게 구성되어 있다. 어렵지도 않아 따라 하기 쉽고, 부모님들도 기억하고 있으니 함께 하기 좋다. 시대를 이어 함께 즐길 수 있는 체조가 있다는 것은 소중한 유산이다.     


6학년의 '손님 모시기''팀 이어달리기'는 운동회에서 빠지면 서운하다. 운동회 절정의 순간인만큼 응원 목소리도 하늘을 찌른다. 달리다가 운동장에 놓인 종이를 주워 펼치면 어떤 손님과 함께 뛰어야 하는지 '명령어'가 적혀 있다. 안경 낀 남자 어른, 모자 쓴 여학생, 가장 예쁜 선생님, 염색한 남학생, 파마한 아주머니, 영어 선생님 등등 달리는 아이들이 찾아야 할 손님의 특징들이 쓰여 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손님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부모님들도 혹시나 자신이 손님이 될 수 있으니 아이들이 달리는 곁으로 나와 기다린다. 모두를 하나로 이어주는 마법의 순간이 운동장에 펼쳐진다.



나도 손님 모시기에서 세 번 뛰었다. 살짝 약해진 무릎이 걱정이 되었지만 뒤로 물러서 있기보다는 적극 참여하는 학교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무리 총평에서 나는, 모든 경기에 적극적으로 즐겁게 참여한 아이들이 멋지고 사랑스러웠다고, 따가운 햇살에도 몸 사리지 않고 적극 참여해 주시고 도와주신 부모님께 감사했다고, 이른 아침 출근해서 만국기를 달고 운동회를 세심하게 준비해 준 선생님께 사랑한다고, 다양한 경기로 재미있게 진행해 준 이벤트 업체 사장님과 관계자들께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이렇게 우리들의 '오월 운동회'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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