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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나무 Jun 15. 2024

함께 복닥복닥 살고 싶어지는

그랜마 모지스의 그림

그랜마 모지스의 그림


<그랜마 모지스>는 미국이 사랑하는 할머니 화가입니다. 70대 후반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101세까지 미국 동북부 시골의 생활모습을 담은 그림을 무려 1600점 남겼습니다.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평소에 즐겨하던 십자수 뜨개를 관절염으로 할 수 없게 되었는데, 동생이 손에 부담이 덜 되는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모지스는 아이들이 쓰던 물감과 붓을 들고 그녀가 평생을 보냈던 시골 모습과 사람들의 삶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그림을 보노라면 그녀가 얼마나 그녀의 삶의 터전인 시골과 그곳의 사람들의 삶을 사랑했는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계절이 펼쳐지고, 계절의 변화에 따라 사람의 일이 달라지고, 그렇게 자연에 순응하며, 서로 어울리고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의 심연에 존재하는 모태 같은 평온함을 느끼게 합니다. 때를 놓치면 안 되는 농부의 일은 고단하기도 하고, 일꾼들이 많은 만큼 아녀자들은 먹일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겠지요. 그래도 복닥복닥 함께 일하다 보면 몸은 고단해도 하하 호호 웃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의 어린 날, 우리 부모님과 이웃의 모습도 이와 닮아서인지 그녀의 그림이 더욱 친숙하게 와닿습니다.





그림은 다정하기 그지없습니다. 검은색 화덕 위에서 냄비는 하얀 수증기를 내뿜으며 보글보글 끓고 있습니다. 옆에는 불을 피우는 장작이 쓰임새 좋게 다듬어져 차곡차곡 쌓여있고, 불쏘시개를 넣어두는 철제 바케스와 재를 쓸어 담기 위한 빗자루도 놓여있습니다. 나무로 된 마룻바닥 위에는 갈색과 초록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큰 카펫이 깔려 있습니다. 초록색의 폭신한 소파에는 인자하고 멋스러운 할머니가 손자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습니다. 손자들은 카펫 위에서 인형 놀이도 하고 블록 놀이도 합니다. 아기 바구니 안에는 아기가 옹알옹알 놀고 있습니다. 반려견을 돌보는 여자 아이도 보입니다. 엄마개는 강아지들이 노는 모습을 가만가만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식을 돌보고 사랑하는 모습이 우리와 닮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모지스 할머니의 시선이 참으로 따뜻합니다.  아기 자기 단란한 일상을 빠뜨림없이, 인형을 실은  장난감 수레와 자전거까지 그려넣었습니다. 넓은 테이블에서 엄마는 밀가루를 밀어 4번째 피자 도우를 만들고 있습니다. 흰색과 파란색 바둑판무늬가 시원한 탁자보 위에 걸터앉은 사람은 아빠일까요? 아빠는 아이들이 제각각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따사롭고 평화로운 가족의 일상입니다.


하루의 노동이 끝나고 가족이 모두 모였습니다. 저녁밥이 준비되고 음식냄새가 집안을 온통 물들입니다. 저녁밥이 되어가기를 기다리며 가족과 함께 쉬고 노는 이 순간은, 우리 모두를 온화하게 하는 그리운 시간입니다. 나의 어린 날에, 우리 사형제는 동그란 저녁 밥상에 둘러앉아 별것 아닌 일에도 웃음보가 터져 깔깔거렸습니다. 아버지의 호통이 떨어져서야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얌전히 밥숟가락을 뜨기도 했지요. 


요즘은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렵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각자 자신의 방에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하는 것이 익숙해져서 '복닥복닥' 함께 하는 것을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미국인들은 그토록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에 매료되었을까요. 화려하고 바쁜, 모든 것이 넘쳐나는 도시 생활의 헛헛함을 달래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랜마 모지스의 그림


가족일까요, 이웃일까요, 모여서 음식을 나누는 그림입니다. 식탁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음식을 먹는 사람들, 부지런히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 장작을 가져오는 사람, 그릇을 매만지는 사람 등이 올망졸망 그려졌습니다. 떠들썩하고 분주하지만 행복하고 기쁜 우리들의 소중한 일상의 한 장면입니다. 가족, 이웃과 함께 이렇게 왁자지껄 음식을 나눈 적이 언제였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간편하고 편리해졌지만, 문득 향수에 젖어들기도 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종갓집 맏아들이었습니다. 우리 집에는 일 년에 명절을 포함하여 제사가 참 많았습니다. 어린 우리들은 제사가 있는 날이면 먹을 것이 넘쳐나니 잔치 같았지만 엄마의 노동은 끝이 없었습니다. 제삿날 아침이면 엄마는 나에게 동네 어르신들 아침 드시러 오라는 전언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제삿날 아침마다 우리 집 대청마루며 마당에는 동네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제삿밥을 나누었습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는 엄마의 힘든 노동이 보였고, 세월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런 모습도 사라졌습니다. 부지런히 그 세월을 사셨던 우리들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가 먼 미국의 할머니 화가의 그림을 통해 전해지고, 나는 어린 날로 가서 아련하게 그리움에 빠져듭니다.


가족과 함께 복닥복닥대며 깔깔 웃고 잡다하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밥을 같이 먹는 시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이며 엄연한 행복 그대로의 시간입니다.



우리네 엄마들과 할머니들처럼
즐겁게 집안일을 하는 것,
그 안에 효율적인 순서와
규칙을 찾고 행복을 느끼는 것,
자신의 자녀들에게
집안일의 지혜를 전달해 주며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삶의 기술이다.

<그랜마 모지스, 평범의 삶의 행복을 그리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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