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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나무 Sep 08. 2024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022년 세례를 받기 전부터 생각했다. 성당에서 봉사를 한다면 '독서'를 해야지 하고 말이다. 남들처럼 몸 쓰는 일에 서툴기도 하고, 성경 말씀을 낭독하는 일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주보에 1인 1 단체에 가입하기를 권유하는 내용을 보고 독서에 가입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다. 이제 막 세례 받은 초신자가  말씀을 선포하는 독서를 하겠다고 한 것이 주제에 넘는 일이란 것을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유튜브에서 신학생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KBS 스페셜, 150년 만의 공개 가톨릭 신학교-영원과 하루) 본 후 깨닫게 되었다. 독서직의 자격은 신학교 4학년이 되어야 주어지는 거룩하고 엄중한 역할이었다. 다행히 우리 성당에 독서 봉사자가 많지 않아 참여하게 되었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참으로 부끄러웠다.


처음에는 개인 사정으로 부득이 빠지는 분들의 자리를 대신 메꾸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 매월 첫째 주 토요일에 있는 '성모신심미사' 독서를 전담하게 되었다.  나는 성당에 가면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계신 것이 참 좋았다. 나 또한 여성이라 성모마리아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세례명도 성모님을 뜻하는 '로사리아'이다. 우연인지, 아니면 그분의 뜻인지 알 수 없지만 '성모신심미사' 독서를 전담하게 된 것은 나에게 큰 기쁨이다.


오늘은 9월 '성모신심미사'가 있는 날이다. 나는 말씀을 전할 때 더듬거리거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미사 전날 미리 독서 내용을 몇 번씩 읽어본다. 어젯밤 독서 내용을 살펴보니 작년에 낭독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두 번 정도 읽어본 후 바로 넘어가 복음 내용을 읽어 보았다. 전에도 몇 번 읽은 내용이라 가볍게 읽고 별다른 생각이 없이 책을 덮었다.


그런데  왜 지금, 여기, 이 타이밍에서 눈물이 핑 돌았을까. 멈추려 애쓰는데도 자꾸만 눈물은 부피를 늘리고 뺨을 타고 흘러내렸을까. 지금껏 몇 번이고 같은 문장을 읽을 때는 그저 '그랬구나!' 하면서 무심코 넘어갔으면서, 왜 오늘 갑자기 내 가슴을 때리는가.


신부님께서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고 복음의 한 문장을 말씀하시는 그 찰나에, 예수님의 마음이 알 것 같은 거였다. 느껴지는 거였다. 십자가 아래서 아들의 죽음을 지키고 선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야만 하는 아들이, 그 순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만 할까, 이런 생각들이 막무가내로 이어졌다. 예수님은 홀로 남겨진 어머니에게는 사랑하는 제자가 '당신의 아들'임을, 그리고 제자에게는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말씀하신다. 죽음을 앞둔 아들이 '할 수  있는', '해야 할'   이보다 더 명징한 일이 있을까. 요한복음 19장 27절은 어머니 마리아를 남겨두고 떠나는 예수님의 고통을 짧은 두 문장으로 쓰고 있다. 너무나 간결해서 더 슬픈, 너무나 담담해서 더 깊은 아픔이 느껴진다. 성경은 알면 알수록 신비롭다.


나는 성당 자리가 마치 오랫동안 찾았던, 내 마음이 기억하는 요람같이 편안하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지만  미사 중에 눈물이 고이는 날이 종종 있다. 어느 시점인지 정해진 것도 아니다. 대중없이 울컥하는 찰나가 있고, 어느 날은 눈물이 멈추지 않고 줄줄줄 흐를 때도 있다. 까닭도 모를 눈물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설명할 수 없지만 위로하는  따뜻한 손길 같은 것을 느낀다. 어떤 날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앙상한 예수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내 현재의 힘듦쯤이야' 싶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가만히 바라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 길을 지켜보고 기다리며 울타리로 존재할 수 있게 하소서' 하게 된다. 어떤 고난도 기꺼이 수용할 수 있기를 하고 가슴에 손을 얹게 된다. 그리고 감사하게 된다.(신앙의 어린이인 초신자 주제에 나도 나 자신이 가끔은 갸웃하다.^^)


초승달이 차오르면 추석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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