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끌림'은 있다. 이유를 설명하긴 어려운데 가고 싶고, 보고 싶고, 머물고 싶은 그런 무언가 말이다. 끌린다는 것은 좋아한다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다. 끌리는 곳에 나를 자주 두는 것은 분명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이다. 행복하려면 내 마음이 끌리는 곳에 자주 나를 두면 된다. 그것이 음악이든, 책이든, 장소이든, 공간이든, 사람이든 나의 감각과 마음이 기쁘고, 편안해지는 무엇 말이다.
기억이 분명하지않다. 이십 대였고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였다. 그 무리가 대학 때 자주 어울렸던 동아리 사람들인지, 초임 교사시절 몸담았던 단체 사람들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억에 빛바랜 사진 한 장처럼 박혀있는 노고단은 운무가 하얗게 내려앉은, 보슬비나 안개비에 촉촉해진 풀과 야생화가 바람에 눕고,싱그러움이 넘쳐나는 높은 산 위에 난데없이 펼쳐진 원시 자연 그대로의 고원이었다.
내 기억 속의 노고단과 지금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걷기 좋게 나무 데크를 깔아놓았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내 기억이 다른 장소와 혼재된 상태로 저장한 건지 나는 자꾸 갸웃하며 혼잣말을 한다. '그때의 그 고원이 이랬었나?' 또는 '종류가 다양한 앙증맞은 야생화가 지천으로 많았던 것 같은데...... 그때는 봄이었을까?' 기억 속의 노고단을 숨바꼭질하듯 자꾸만 찾게 된다.
운무가 시야를 가리고, 물기를 머금은 시원한 바람에 촉촉해진 머리카락이 날리던 기억. 그때 나는, 군중 속이었지만 혼자만의 완전한 자유를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기억의 깊은 곳에 잃어버리지 않게 꼭꼭 잘 보관해 두었나 보다.어느 날 갑자기 노고단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반짝하고 드는 것이다. 강산이 두바퀴 반 변했을 즈음에 말이다.고원, 안개, 구름, 바람, 야생화, 자유와 비상의 이미지로 기억하는 노고단에 가고 싶은 마음이 보름달처럼 둥글게 차올랐다.
지난 해 가을, 노고단을 보러 갔다. 두번째 노고단 방문이었다. 노고단의 일출을 보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도 노고단 일출을 보지 못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장님이 겨울용 파카 없이 새벽에 등산은 무리며 추위를 견디기 힘들거라며 극구 말렸기 때문이다. 해발 1507미터 노고단의 새벽은 바람이 세차고 기온이 급하강한 상태라는 것이다. 산에 대한 무지가 낳은 결과였다. 두번째 방문한 노고단은 광활하고 깊은 지리산의 품으로 맞아주었다. 파란 하늘 아래 가깝게 또 멀게, 굽이굽이 겹겹이 이어지는 지리산의 능선, 뻥 뚫리는 해방감. '역시! 지리산!' 장대한 산이 뿜어내는 크고 넓고 깊은 에너지를 눈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동안 나는 혼잣말을 되내고 있었다. '또 오고 싶다'고.
그리고, 긴 추석 연휴, 지난 해 보지 못한 일출도 볼겸 노고단을 다시 찾았다. 세번째 방문이다. 더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고, 기온이 낮은 새벽 산행은 상상만으로도 상쾌했다.
까만 하늘에 반짝반짝 쏟아지는 별을 보는 일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산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반짝이는 법이란 걸.
운무를 휘젓는 시원한 새벽 산 바람이 얼마나 상쾌한지.
하얀 운무에 가려진 시야는 걸음을 옮기면 앞장 서서 저 만치서 밝아지는 신비.
풀도 야생화도 바람따라 운무따라 춤추며 누웠다 일어섰다 아침을 맞이하는 풍경.
고요한 활기. 밤을 밀어내는 이른 아침 자연의 향연.
그때, 나의 이십 대에 보았던 운무, 바람, 자유가 이 모습이었을까!
변함없이 그곳에 있으되 늘 다른 표정으로 사람들을 품어주는 노고단. 아마 나는 또 이곳에 끌려 어느 날 이 넉넉한 품에 안길 것이다. (노고단은 아직 나에게 일출의 표정을 허락하지 않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