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네이션'을 읽고
이 책은 올해 초에 직접 사서 읽었다. 책을 사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인데, 변화하고 싶거나 그 순간을 책 속에 기록해두고 싶거나 이다. 이 책의 경우 두 가지가 모두 해당 되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첫 프로젝트가 끝났다. 그리고 넥스트 플랜이 없다. 회사는 다니고 있지만, 일을 하고 있지 않았기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주 정도는 회사 내 교육을 집중적으로 들었고, 그 다음부터는 이직 준비를 했다. 일년 넘게 먹고 있던 우울증 약도 단약하고 싶었다. 그러나 다음 프로젝트에 투입된 후가 걸렸다. 또 우울증 약을 먹어야만 넘치는 울렁거림과 긴장감을 다스릴 수 있을까봐. 약이 없으면 일을 하지 못하고, 일을 하지 못하면 무너져내릴까봐 두려웠다.
미래에 정해진 것이 없다는 막막함. 그 막막함은 점점 나를 게임과 운동, 그리고 끊임없는 컨텐츠 소비 굴레에 빠지게 했고 변화가 필요했다. 그때 닥치는대로 중독에 관한 책을 읽었고, 필사를 했다. 이 책은 그 시기에 직접 사서 읽은 책이었다.
말하자면 자신으로부터의 도피와 같은 것. 나는 단순한 머지 게임류를 좋아했다. 단순하고 결과가 명확했다. 돈을 조금 내면 막힌 부분도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 매일 아침 에너지가 리셋되어 원하는 바를 한시간이고 몰입해서 할 수 있었다. 시간을 흘러가고 레벨은 올라간다. 사실 취업한 후부터 일이 안풀릴때마다 화장실에 가서 머지 게임을 했다. 안 풀리는 여러 이슈가 튀어나올 때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방어했지만, 지친 마음을 달래는 건 하나뿐이었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더이상 즐겁지 않았다. 사실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 책은 맥락으로 다가오기보다는 글자 하나하나로 다가왔고, 감상을 말하거나 글을 쓰지 못했다. 그렇게 오로지 필사만을 하길 반복했다.
그러던 중 작가가 중독에 빠져드는 순간을 고백한 구절을 만났다.
내가 내 소설 읽기의 쾌락 중추를 불태워버려서 아무 책도 이를 되살릴 수 없게 되버린 것이다.
여러 번 필사를 하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게임마저, 컨텐츠마저 나를 구원해주지 못하면 어쩌지?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은 이미 나를 설레게 하지 않는다면, 지금 중독된 것 역시 그렇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지금와서 돌아보면 앞에 답이 보이지 않아 그저 버텨야 할 때가 있다. 사람들에 의지할 때도 있었고, 그들 마저 두려운 순간 여러 다른 중독에 의지하곤 했다. 무엇이 두려웠냐 물으신다면 엉망인 스스로를 보이기 두려웠던 것같다.
지금은 직군 전환을 하고, 매일 나를 기다리는 일을 하고 팀원들과 어울리며 다소 안정된 하루하루를 누리고 있다. 게임은 굳이 할 필요를 못느껴서 안한다. 최근에는 다이어리 쓰기와 서점 아이쇼핑에 정을 붙이고 있고, 다이어트를 하며 절제가 중심인 삶을 살고 있다. 게임 앱을 한 달 정도 사용하지 않자, 저장용량을 근거로 삭제해버렸다.
뇌의 항상성을 믿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 지금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중이다. 내 주위 사람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고, 가끔 불안정하기도 하지만 금방 안정된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다시 교감하는 지점을 만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저번주 금요일에는 전배 후 6개월이 되었음을 기념하며 서점에서 책을 샀다. 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서점에서 첫 단편을 읽었을 때 눈시울이 붉어졌고, 구매 후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읽었을 때는 펑펑 울었다. 슬픔이라는 감정의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렸다. 거센 파도가 휩쓴 후 잔잔한 물결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을 온전히 몰입하고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의 삶을 엿보고, 감정이 동해 울어본 게 언제였던지. 울적한데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유튜브에 ‘울고 싶을 때 보는 영상’, ‘울음 참기 첼린지’를 검색하며 뒤적뒤적 거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몰입하는 일은 꽤 즐겁다.
우울증 약 단약도 6개월차다. 1년간 거의 하루에 세번씩 약에 의존했던 나에게는 장족의 발전이라고, 정말 자랑스럽다고 스스로 느낀다.
내가 잘 기능할 수 있는 상태를 ‘고요’로 정의하고, 고요를 유지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일상에서 찾는다. 커피보다는 차를, 화장실보다는 명상실을, 필사 대신 내 글을 쓰며 나다움을 채워간다. 어제 역시 새로운 사람 무리 안에 들어가보았는데, 여전히 힘들다. 하지만 해볼만 하다고 느낀다. 눈이 촉촉해지고, 물을 4컵을 비웠지만, 중간에 하고 싶은 말을 까먹어서 노트에 미리 적어둔 내용을 보고 다시 말을 이어갔지만, 10명 정도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데 조금 익숙해진 것 같고, 그런 내가 정말 멋있다.
마음에 걸리는 구절이 많아 여러 번 멈춰섰던 책이 이제는 술술 읽힌다. 어쩌면 환상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노력하면 선망하는 그와 같은 존재가 되어 여러 사람 앞에 딱 나타나리란 희망은 환상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도망가려 해도 아프게 하는 그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고통을 환대하고, 잘 구슬려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사실 언제나 내가 바라온 건 그뿐이었던 것 같다. 이번 공통 도서 모임에서 느낀 바를 이 글에 갈무리한다.
위 글은 2023년 9월, 독서모임에서 책 '도파민네이션'을 읽고 쓴 글이다. 이토록 투명하고 담담할 수 있을까.
여전히 머지 게임 중독자로, 게임 속의 질서정연한 세계를 좋아한다. 게임에 집중하느라, 책상과 책장이 무질서하게 어지러진 상태를 맞이하고, 허무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시, 이 상황을 조금을 반전시키고 싶어서 귀퉁이부터 다시 방을 정리하기도 한다.
삶의 불안정함을 기민하게 느끼고 그로인해 무언가에 깊이 중독되고, 또 다시 그 중독에서 헤어나오는 것들을 복하는 과정. 이제는 시도하고 실패하는 그 과정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적 맥락을 생각하기로 한다.
즉, '그럴 수밖에 없었던 세월들에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던 것도, 곁눈질 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세월도, 충격을 받아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세월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따뜻한 눈길을 건넨다. 동시에 스스로를 보듬는 순간의 파이를 늘려간다.
최근에는 최유리 님의 노래를 들으며, 최은영 작가님의 글을 필사하며 나만의 고요 속에 침잠한다. 그 가운데 괜찮지 않았던 날들을 돌아보고, 위로하기도 하고, 실질적으로 해결전략을 적어내려 가기도 한다. 그렇게 내 삶을 통제하려 하기 보다는, 행복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의 삶을 고민하여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여러번 반복하다보면 언젠가는 나만의 '디톡스', '중독 루틴'에 대해 찾을 수 있겠지. 그 모든 과정에서 스스로를 부인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2024년 11월 디지털 디톡스 주간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