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삶-일상 적응기
반년 만에 가족이 함께하다
태평양도 대서양도 인도양도 건너지 않는다. 고작 한 시간 거리의 서해바다만 건너면 된다. 중국과 한국 간 비행시간 1시간. 그곳은 미국 또는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도달하기 어렵고 먼 곳이었다. 남편과는 5개월 만에 같은 대륙에 머물게 되었고, 6개월 만에야 한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아이들은 아빠를 만나 매우 신나 했고 우리는 반가움으로 밀린 대화를 나누다 새벽까지 잠 못 이루기도 했다.
하루에 한 군데만 갈까?
반년 만에 함께 한 만큼 아빠 남편은 주말에 그간 가족들과 함께 가려고 봐 둔 좋은 곳에 데리고 다녔다. 바깥공기를 쐬고 싶고 주변 풍경이 궁금했지만 한 달여간의 실내생활로 바이오리듬이 다운되어 이곳저곳 다니니 몸은 참 피곤했다.
뚜벅이 삶
주말 동안 연태 개발구 집 주변을 둘러보면서 깨달은 바가 많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마음이 우울해지기도 했다.
주재원의 아내는 중국에서 운전을 하지 못한다. 기동성은 없는데 주변에 편의시설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간간이 한국 간판도 보이지만 대부분의 간판이 한자인 만큼 까막눈으로 못 알아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서울, 인구 밀도가 높고 복잡한 곳에 살았다. 강남역까지 도보 15분이면 거뜬히 도달할 수 있는 곳이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길목에는 대단지 고층 아파트와 고층 빌딩이 촘촘히 들어서 있고 상가, 음식점, 회사, 병원, 마트, 학원 등 편의시설이 집중되어 볼거리, 즐길 거리, 누릴 거리가 즐비한 다이나믹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우리 동네는 ‘마을’이라는 말이 연상되는 오래되고 정감 있는 모습을 간직한 곳이었다. 집 밖을 나서면 1분이 채 안 되는 거리에 놀이터, 빵집, 커피숍이 있고, 실내체육관, 유치원, 공연예술관 등 편의 시설과, 맛집 음식점, 미용실, 학원이 빽빽한 곳에 살아왔다.
남편은 집을 구할 때 나의 기동성, 접근성, 편의시설을 고려해 넓고 쾌적한 아파트보다는 한국인이 살기에 인프라가 최적화된 아파트를 구했다. 해외 파견 근무지로는 ‘오지’로 구별되는 곳이기도 한 연태로 이주하면서 집만큼은 한국보다 좋은 컨디션을 바랐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서울에서는 누리지 못하는 바다 전망에 ‘와~!’도 했지만 있던 ‘내 방’이 없어졌기도 했고, 오래된 집에서 살아온 만큼 이 많은 새 아파트와 그 많은 선택지 중 하필 왜 이 낡은 아파트에…’ 란 실망감이 있었다.
집은 그렇다 치고 밖을 돌아보니 그 많다던 편의 시설은 이런 것이었구나. 이곳에서 몇 해 생활한 선배 주재원은 아파트 주변에 상가도 많은 편이고, 10분 걸어가면 가까운 곳에 대형마트가 있고, 좀 더 걸어가면 또 쇼핑몰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대륙 스케일로 뭐든 널찍널찍 배치되어 있다.
격리 기간 동안 그렇게 가고 싶었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커피숍에 갔다. 커피 맛과 함께 카페에서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힐링이 되기도 하는데 어수선한 인테리어에 마음만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졌다.
인어공주가 떠올랐다. 왕자에게 반해 인간의 다리를 얻는 대신 자신의 목소리를 버렸던 인어공주. 나는 무엇을 기대하며 무엇을 기꺼이 내려놓고 이곳에 온 것일까…? 생각했다.
가족 맞이를 준비하며 지난 몇 달간 최선의 선택을 했을 남편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곳이 내가 앞으로 3년 이상을 보낼 곳이라니 만족스럽지 않았다. 머리로는 감사해야 한다 생각하지만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으니…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하나 싶다.
나만 잘하면 된다
아직은 따뜻한 엄마의 품과 안전한 집이 제일인 아이들은 기본적 욕구가 채워지면 나머지는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다. 학교생활도 즐겁고 이곳이 좋다고 한다. 남편은 회사 업무가 주고 나만 잘 지내고 잘하면 되는 건데.
중국 여행을 여러 차례 해 기대가 없는 만큼 실망도 없을 거라 했는데 왜 이런 맘이 드는 걸까? 좋은 것에만 익숙해왔던 걸까? 내가 알고 있던 중국은 수도 베이징으로 전철로 원하는 곳으로 이동이 용이하고, 유명한 광관지를 쉽게 확인하고 이동할 수 있고, 외국인들이 살기에도 편리한 곳이었다. 연태에서 베이징의 삶을 기대했었나 보다.
난 회복력이 좋은 사람이야
실망감과 우울한 마음을 빨리 떨쳐버리고 싶었다.
자연이 위로해 주다
화창한 주말 가족이 바닷가 산책을 나갔다. 맑은 하늘에 태양을 등지고 찬바람을 맞으며 사방이 넓게 트인 바다와 맞닿은 하늘을 마주했다. 파도도 내 마음도 잔잔했다. 바다를 바라보고 사진을 찍고, 미역을 던지는 아이들. 아이들과 함께 달리기도 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연태에 대한 인상이 조금 개선된 듯하다.
깊고 푸른 바다, 구름 그리고 하늘
碧海云天(삐하이윈티엔) ‘깊고 푸른 바다, 구름 그리고 하늘’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아파트 단지. 한국 주재원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16층 집에서 내다보면 한쪽은 바다전망이고 다른 한쪽은 시내전망이다. 바다 전망에서는 해변까지 연결되는 넓은 공원도 보인다. 격리하는 동안 창문 너머로 조깅 또는 산책하는 사람, 오토바이를-후에 알게 된 ‘띠엔동’-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자주 봐왔던 곳이다.
저녁 식사 후 남편과 집 앞 공원을 산책했다. 찬 바람을 맞으며 눈이 내린 흔적이 남아 있는 산책길을 걸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복잡한 강남에서 자연이라고 누리고 애용하던 산책길이 있다. 그 좁은 산책길 대신 이곳에는 넓은 산책길이 있다. 겨울이라 나뭇가지만 앙상한데 봄이 되어 초록이 보이기 시작하면 예쁠 것 같아 기대감이 생긴다.
7:50분에 셔틀을 타는 아이들을 깨워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셔틀버스에 태워 보내고 난 뒤 찾아오는 나만의 시간에 산책길을 걸어 집으로 귀가한다. 걷다 보면 눈도 머릿속도 또렷해지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산책길 때문에 점점 이곳이 좋아질 거 같다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벌써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그렇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면 바다도 산책길도 그리워질 것 같다.
그리고 이곳의 다른 모습의 삶도 익숙해진다. 일주일 정도 생활하며 자꾸 걷다 보니 도보 10분은 쉽게 걸어 다니는 곳이고 도보 20분 거리에 쇼핑센터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어수선한 카페 인테리어도 전처럼 거슬리지 않는다.
인간의 적응력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