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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비 Nov 16. 2018

하마터면 놓칠 뻔한, 당신의 소리

지금이 아니면 안 될 소리들



 음악소리를 낮추면 금방 소리를 키워달란 손님들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마주 앉은 친구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카페 직원에게 스피커 볼륨을 줄여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그 후로도 서너 번 비슷한 부탁을 했지만, 같은 이유로 거절당하거나 얼마 못 가 소리는 제자리를 찾아갔다. 쿵쾅쿵쾅 말소리를 한입에 삼키는 노래라도 나올 때면 카페 안 사람들도 덩달아 볼륨을 높여야 했다. 책을 펴 놓은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어느 누구도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유별난 건가.




 바르셀로나 고딕지구의 좁은 골목길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카페를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을 만날 수 있다. 스페인어로 네 마리 고양이(4GATS)란 뜻을 가진 카페는 1887년 문을 연 바르셀로나의 터줏대감이다. 가게보다 단골손님이 더 유명한 이곳은 피카소, 호안미로, 가우디 등 당대 최고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아직 이름이 없는 하루살이 예술가들은 그 좁은 카페에서 세상을 나눠먹었다.
중얼거린 혼잣말도 당신에게 속삭인 비밀 이야기도 좁은 공간에선 모두의 공유제였다. 수다 중에 튀어나온 벌거벗은 이야기는 고스란히 캔버스에 담겼다.  

       
 천재들의 빈자리는 이제 보통사람들의 몫이 됐다. 첫 술을 뜨기 전 젊은 피카소를 떠올렸다. 그가 좋아했을 법한 자리에 앉아 그의 세상을 내 것과 뒤바꿔본다. 거창한 예술담론 대신 없어도 이상하지 않을 가벼운 수다가 카페 안을 채운다. 감정을 자극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몇 시간 째 적막이 흐르지만 그 누구도 왜 음악을 틀어주지 않느냐며 불평하지 않는다.

4GATS, Barcelona ⓒbyhuman


 대신 내용을 알 수 없는 수다와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카페 안을 채웠다. 가끔 유별나게 큰 웃음소리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대부분 귀에 익숙한 소리다. 옆 테이블의 이야기를 엿듣다 할말이 마땅치 않을 때 빼앗아오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릇이 부딪히고 요란한 믹서 소리가 이따금 들리지만 거슬리지 않는다. 신문지와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는 오히려 반갑다.


  안 그래도 들어야 할 소리가 많잖아요.


 음식을 가져다 준 여자 종업원이 무심한 척 답안지를 스윽 건넸다.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들어야 하는 소리’라고 했다. 가만 보면 놓쳐버린 소리가 여럿이다. 리듬도 멜로디도 없지만 곁을 서성이며 호흡하는 익숙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


 몇 해 전 겨울 당신이 지나가듯 건넨 그 짧은 몇 마디가 그랬다. 지금 막 생각한 듯 했지만 몇 번을 고민한 그 닳고 닳은 말들을 놓치지 말아야했다.

 

Langkawi, Malaysiaⓒbyhuman


Imagine.
별안간 음악이 꺼진다면 우리는 그 시간을 감당할 수 있을까?(흥이 필수인 술집이나 클럽은 제외)  


 적막이 서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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