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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빈 Mar 03. 2021

뭐 어쩌라구요!

자기 비하와 학습된 무력감

대학원과 임상심리 수련을 거치며 자기 비하를 하는 경향성이 상당히 심해졌다. 원래도 염세적이기는 했으나 근거 없는 자신감은 있었는데, 많은 학습량과 업무량을 소화하며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니 내 안의 무언가가 구깃구깃 쪼그라드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나의 과제를 해결하더라도 끊임없이 할 일이 주어지다 보니, 그저 컨베이어 벨트 위를 달리는 공산품이 된 기분을 느낀다.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해결한다기보다는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떠밀려가 끝에는 쓰레기섬에 도달할 것 같은 무망한 예감. 이런 흐름은 결국 불행을 자초한 나 자신에 대한 무자비한 비난으로 이어지며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심리학에 학습된 무력감(leanred Helplessness)라는 개념이 있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 제안한 개념인데,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당면하면 무력감을 느끼고, 이런 상황이 장시간 지속되면 그런 무력감을 학습하여 자신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 들도 포기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나의 현재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개념으로 이보다 더 적절한 것이 있을까. 수련 도중의 나는 무언가를 계속하고 일을 벌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공포감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불과했다.


수련을 마친 지금, 그래도 조금 빛이 보이는 것 같다. 통제 불가능한 환경에서 탈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해내고 주변인들의 지지를 얻으며 사회재활훈련 중이니 말이다. 언젠가는 비교적 긍정적이었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긴다. 누군가 말해준 것처럼 실패할 것 같은 기분이 들거나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줘야겠다. "어쩌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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