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의 달리기
2023년 9월경 느닷없이 달리기를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러닝화를 장만하여 집 근처 천변에서 혼자 달려보기도 하고, 여러 사람과 노을지는 한강공원을 뛰며 함께하는 재미를 알게되고, 지인과 크루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달려보기도 했다. 임상심리전문가로서 심리학과 뇌를 공부를 하며 달리기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이득에 대해 이론적으로 배우기는 했지만, 직접 온 몸으로 체험해보니 그 즐거움과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긍정적인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성실히 했다고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나름 꾸준히 달려왔다. 한 달에 30km에서 100km까지, 나의 컨디션에 따라 달리는 거리는 들쭉날쭉했지만, 그래도 아예 달리지 않은 달은 없었다. 기분이 가라앉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도 일단 운동화를 신고 나가면 어떻게든 달리게 되었고, 1~2km 정도 하천을 따라 신선한 공기로 폐를 채우면 무의미하게 암전되었던 하루에 색채가 생기는 듯했다. 그렇게 10킬로, 하프마라톤에 참여하게 되었고, 결국 42.195km 풀 마라톤이라는 무리한 도전을 하게 됐다.
사실 경도 비만인 내 체중으로는 풀 마라톤 참가는 자기 학대에 가까운 일이었다. 게다가 보통 풀마라톤에 참가하기 전 소화해야하는 훈련 양(이를테면 한 달 150km의 마일리지(달린 거리의 총량) 쌓기, 쉬지않고 30km를 쉬지 않고 달리기)이 있는데, 체중 감량에 실패하여 여전히 육중한 몸을 가진 상태로 한 달 겨우 100km의 마일리지를 쌓았으며, 풀마라톤 전 날 25km 훈련을 겨우 해낸 정도로의 상태였다.
달리는 전날 까지 머릿속에 "포기할까?"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러나 포기하기엔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 평소 조금씩 쑤시던 정강이도 아프지 않았고, 몸도 가벼웠다. 시작도 하기 전에 그만두는 것은 그간의 내 노력을 헛되게 만드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갑자기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꼭 완주할 필요는 없지 않나?". 누가 나를 완주하라고 협박하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그리 두렵고 불안했을까? 끝까지 달리기로 마음 먹는 것도, 중간에 포기하는 것도 나의 자유인데 말이다.
결국 나는 2024년 11월 3일, 생애 첫 풀 마라톤에 참가하기로 결정했고, 5시간이 넘는 시간이지만 완주까지 하게 되었다.
중간중간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어떻게든 결국 해냈다. 오히려 마음을 내려놓으니, 한발자국 한발자국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어찌 보면 내 삶에서 그렇게 큰 의미가 없는 활동일 수 있지만, 이 마라톤을 통해 참 많은 것을 느끼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낼 힘을 얻었다.
앞으로의 적어나갈 글을 통해 많은 분들에게 내가 러닝을 통해 느끼고 배운 즐거움과 삶의 지혜를 조금이나마 전하고 싶다. 이미 달리기를 충분히 즐기고 있는 분에게는 왜 우리가 그토록 달리기에 몰두하게 되는지를 되새기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아직 달리는 것이 망설여지는 분에게는 달리기의 즐거움을 알려 달리기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드리고 싶다. 아직 글쓰기도, 달리기도 부족한 나이지만, 달리기에 대한 나의 진심만큼은 전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