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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감독 Nov 29. 2018

너 상처는 너가 알아서 하면 안 될까?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딨을까. 나야말로 상처 투성이다.


내 상처들을 말해보자면,


친구가 나에게 삐져 1년 동안 서로 만나지 않았을 때

예전 사귀었던 이성친구가 멋대로 오해하여 내게 상처 받은 얼굴을 했을 때

드라마 스텝으로 일 할 때, 내가 잘 모른다는 이유로 현장에서 소리치던 선배의 모습에

예전, 아빠가 크게 사기당한 후 살고 싶지 않다고 고백했을 때 (현재, 우리와 함께 잘 살고 계신다. 고마워요 아빠^^;)


(이 공간에서 말할 수 있는 것 들 중, 가장 상처되는 걸로 뽑아보았다.)


크든 작든 사람은 늘 상처 받고 상처 주며 살아간다. 피해받기 싫어 피해 주지 않는 나의 이기심 혹은 냉정함이 누군가에게는 상처였을지도 모르고, 예민한 마음을 관리하지 못한 탓에 주변인들에게 혼란을 준 적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잠이 잘 안 온다. (잘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요 근래 가장 크게 내가 '상처'로 싸워 본 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넌, 내 상처 따위 관심도 없지? 



(어. 당연하지...)

(방금 네가 관심 없게 만들었잖아?...)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그 날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남자가 보고 싶거나, 그립거나 하는 이유는 한사코 아니다. 단순히 각자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



남: 요즘에 누가 너한테 번호 물어보거나, 말 걸었던 남자 없어?


여: 응? 아 없어!


남: 만약에 걸면 어쩔 거야? 나한테 말할 거야?


여: 말하는 게 났나?


남: 그러면 안 한다고? 안 하겠네. 안 했던 거네 지금까지?


여:??? 아니야. 요즘에 그런 적 없었어 그리고 나는 다 말하잖아  


남: 너는 말에 확신이 없어. 아니 사실 나는 너를 믿을 수 없어. 꼭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삼십 분 뒤,


내 입에서는 "아니라고!!!!!!!!!!!! 그런 적 없다고!!!!!!!!!!!!!!!!!!!!"라는 언성 높고도 앙칼진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울었다. 세상 온갖 섭섭함을 토로하며 '너에게서는 내 상처를 정말 진심으로 지켜주려는 마음이 안 느껴진다'며 자신이 주는 마음과 내게 받는 마음이 너무 차이가 커서 섭섭하다고.


일단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머리에 돌을 맞은 듯 어지러웠다. 가만 보자. 내가 진짜 이 사람의 상처를 무시했었나? 혹시 내가 부족히 보듬어준 건 아닐까? 나를 탓했다. 그러고 생각의 끝 즈음엔 결국 아닌데? 내 상처도 내가 뭘 어쩌지 못하는데 내가 너 상처를? 왜? 


한 번도 그의 상처에 대해 가볍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며, 또 그것을 부정했던 적도 없었고, 나는 실수한 적도 없었다. 그런 내가 왜 이러한 취급을 받아야 하며, 상처 받았다는 얼굴을 하고 내게 스스로 체념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역으로 내가 상처 받아야 하는지 답답함이 치밀었다.



너는 내 상처를 진정으로 이해해야만 해!



그 사람의 상처는 내가 살면서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사귀던 이성친구들에게 두 번이나 배반의 장면을 목격했다는 그의 상처. 그래서 그는 여자 친구를 잘 믿지 못하는 병에 걸렸고 그 병은 일명 '트라우마'로 이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런 상황을 마주한 적이 없다. 그래서 그 사람의 감정을 추측하고 내가 조심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내 나름의 노력은 그에게 비춰지지 않았고 그는 그의 상처에 대해 집중하기 바빴다.


당혹스러웠다. 그 사람의 몇천 일 동안 가져온 상처의 감정을 내가 고작 몇십 일 만에 헤아릴 수가 있는 문제 일지. 위로의 말을 건넨다고 해도 그것이 진정성 있는 위로가 될런지. 너는 내 상처를 진정으로 이해를 해야만 해!라고 말하는 사람을 계속해서 문제없이 만나도 괜찮을지.


그 후 찝찝한 마음을 가지고도 계속해서 만남은 이어졌었다. 그치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서로의 마음속에 남겨져 있었고 똑같은 이유로 주기적으로 다투게 되었다. 겉으론 흔한 연인의 싸움이었지만  내 마음은 파국이었다.


자신의 상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지 않는다는 그에게 나는 의도치 않은 억울함을 느꼈다. 그 후로 상처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고민해 볼 수 있었는데, 상처라는 건 우리네 인생과 상생하는 '시너지 효과' 쯤으로 분류해둬도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의 의연한 사람을 멋지게 보게 되었다. 멋지게 볼 필요까진 없지만, 나도 나의 상처를 대할 때 의연하게 묵묵히 그 순간을 나열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렇게 되려면 자신과 대화를 충분히 해보고, 그 상처에 대해 직면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하고 피해, 돌고 돌아 직면되지 못한 상처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녀 나를 괴롭힐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지난 연애를 이후로 나는 내 상처 때문에 졸지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곧 잘 돌아보게 되었다. 내 상처는 내가 철저히 관리하도록 하며, 그간 내게 상처 받았던 사람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그니까 있잖아.


"너 상처는 네가 알아서 하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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