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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반니 Dec 20. 2021

나는 불임이다.

스무 살, 산부인과에서 불임을 진단받았다.

“음, 병명은 뇌하수체 기능 저하증이에요. 


쉽게 설명하면 뇌하수체라는 곳의 기능에 이상이 생긴 거예요. 뇌하수체에서는 우리 신체 기능에 영향을 주는 여러 호르몬이 분비되는데요. 본인의 경우는 그중 성호르몬 분비에만 이상이 있어요. 그래서 생리도 하지 않는 거고요.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어요. 그래서 따로 치료할 방법도 없어요. 


가장 큰 문제는 임신이 어렵다는 거예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해요. 


시험관 시술을 해볼 수 있는데.. 이것도 일반적인 시험관 시술로는 안될 거예요. 아예 호르몬 분비가 안되고 있으니까요. 호르몬 펌프라는 게 있는데 그걸 몸속에 심어야 할 거예요.

광주에서는 그 방법을 하는 병원이 없을 거고요. 좀 더 큰 병원 가야 해요. 



결혼 생각 있으신가요? 아이도 낳으실 거죠?



되도록 빨리 결혼하고 임신해야 해요. 

지금도 난소가 많이 위축되어 있어요. 조금이라도 난소가 기능을 할 때 시도해야 그나마 성공할 수 있어요. "








내 나이 스무 살. 


아무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해도 ‘스무 살’은 특별하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나이. 수능이라는 대학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사회 구성원으로서 모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술집에서 술을 마셔도 되고 미성년자 불가 영화도 당당하게 볼 수 있다. 모든 자유가 주어지는 스무 살, 그 나이에 나는 불임판정을 받았다. 




뇌하수체? 호르몬? 호르몬 펌프? 




도대체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내뱉는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을 난 그저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결혼과 임신이라니, 난 이제 겨우 스무 살인데.. 앞으로 결혼은 할지 안 할지, 한다면 누구와 할지 아이를 가질 것인지 그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 그 모든 걸 지금 결정해야 한단 말인가?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나의 이런 심정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매달 호르몬제를 처방받기 위해 병원을 방문하는 나에게 늘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언니나 여동생이 있나요? 있다면.. 불법이지만 난자 공여를 생각해봐요.”




난자 공여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난 정말 엄마가 될 수 없는 거구나란 생각에 병원을 나오면서 펑펑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학교에 갔다. 내가 불임인 것은 우리 가족 외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으니까. 외부에 비치는 나는 20대 초반의 싱그러운 여대생이었으니까 말이다.








<서른아홉에 폐경이라니>를 쓴 저자는 글로벌 향수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지내다가 결혼도 하지 않은 서른아홉이라는 나이에 폐경을 맞이한다. 사실 폐경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겪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경에 대한 이야기는 터부시 된다. 더군다나 30대 후반이라는 이른 나이에 폐경을 맞이한 저자의 당혹감과 절망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나는 적어도 저자가 말하는 일부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저자의 불안감과 분노에 공감할 수 있다. 나도 겪었고 나도 느꼈던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몸에 열이 확 오를 때면 호르몬 때문인가? 싶었다. 잠 못 드는 날이 길어지자 뇌하수체 기능의 문제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주체 못 할 식욕으로 밤마다 폭식을 하며 이건 다 호르몬 때문이라고 합리화했다. 어디서나 자신감 있지 못했다. 결혼도 못할 것이고, 임신도 못할 것이기에.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그래. 나는 결혼하지 않겠어. 

혼자서도 얼마든지 멋지게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어. 



그때부터였다. 


자기 계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그 무엇보다 '나' 자신의 발전과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된 것이.






그리고 그것이 10년이 지나,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선 그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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