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없는 남편을 간호하는 아내
간호학생이라면 졸업 할때까지 고통 받는 과제가 하나 있는데 흔히 말하는 case study이다.
실습 한 병동에서 본인이 한 환자를 정해 그 환자의 질병에 대한 문헌고찰부터 환자 상태에 대한 사정, 간호진단, 계획, 간호 수행, 평가 등을 하고 1~2주간의 실습 마지막날 발표하는 과제이다.
나 역시 case study가 실습의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하나였고 15장이 넘는 보고서를 밤새 쓰면서 고민한 적도 정말 많았다.
졸업을 앞두고 그동안 내가 했던 수 많은 case study를 보며 문득 3학년 2학기 외과 실습 때 했던 사례가 떠올랐다. 환자는 30대 중반 남자분이었고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가 추락하는 사고로 인해 뇌를 크게 다쳐 의식이 없고 눈만 떠 있고,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딸꾹질을 반복해서 모든 의료진들이 노력하고 애쓰던 환자분이었다.
다친 뇌를 수술 했지만 불행하게도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실습 내내 늘 곁에는 아내가 계셨다. 오랜 병원 생활로 지칠 법도 한데 아내분은 늘 간호사뿐 아니라 학생 간호사들에게도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간단한 혈압을 재러 내가 가도 "선생님 너무 고생많아요. 언제까지 실습 나와요?","난 선생님이 작은 것도 꼼꼼하게 잘 해줘서 너무 좋아요. 정말 좋은 간호사가 될 수 있을 거예요."라며 나에게 늘 격려의 말을 해주곤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실습 중 내가 물었다.
"병원에서 늘 간호하시느라 힘드시죠? 그래도 이렇게 정성 가득하게 간호 해주시는거 환자분이 다 느끼고 계실 거예요."
그러자 아내분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정말 그럴까요? 이 사람이 내 목소리를 1초라도 듣고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결혼하고 일주일만에 이 사고가 생겼고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요. 이 병상 옆에서요..
신혼 생활도 즐기고 싶었고 예쁜 아이도 낳고 싶었는데 저에게 그게 평생의 소원이 될 줄은 몰랐어요."
사고로 오랜 병원 생활을 하고 있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 사고가 결혼 일주일만에 발생한거라는 말은 환자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희박함에도 끝까지 곁을 지키고 최선을 다하는 아내분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먹먹하고 아려왔다.
길었던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하며 물었다.
"있잖아 만약에 너가 사랑하는 사람이 큰 사고를 당해서 의식이 없어. 그럼 넌 언제까지 간호할 수 있을 것 같아?"
"음...글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몇 년의 긴 세월을 간호하기란 정말 어렵겠지. 나 자신도 지칠 것 같아."
사실 나도 그랬다. 병원에 있다보면 이 환자의 가능성이 얼마일지 생각해보게 된다. 감히 있을지도 모를 작은 기적은 나와 의료진이 생각하는 가능성에 잘 포함되지 않는게 현실이다.
그렇다보니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 될 땐 적극적인 치료보다는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는게 최선이라 쉽게 단정 지을 때도 있고, 희망,기적 같은 단어를 마음 속에 많이 담고 있지 않으려고 했던 때도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5년의 세월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처음 그대로 사랑하는 남편 곁을 간호하던 아내분의 모습을 생각하며 의식이 없는 환자를 간호 할 때 간호사의 의료적인 지식으로 제공하는 간호보다 단 한순간이라도 사랑을 느끼게 해주며 삶을 마무리 할 수 있게 해주는게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나는 생각만 해도 지칠 것 같은 긴 세월의 간호를 끝까지 옆에서 해주던 아내분의 사랑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가지게 했다.
사랑이라는게 뭘까?
무엇이라고 딱 한마디로 정의하기엔 아직 부족한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 하나만은 이 환자를 보며 알 수 있었다.
사랑이란 죽음과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느끼는 환자가 삶의 마지막까지 느끼고 싶어하는 것.그리고 삶을 살아가는데 인간이 느끼는 가장 중요한 감정 중 하나라는점이다.
지금 사랑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지금의 감정의 소중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매일 가득하길 바랍니다.
*이미지 출처: 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