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립이 두렵다
2월 1일 믿기 힘들었던 응급실 입사.. 어느덧 3월이 다 흘러가고 4월이 다가오는 시점 나는 입사 2개월을 맞이하고 있다.
신규 간호사에게 입사 후 2개월은 곧 다음 달부터 사수의 품을 떠나 혼자서 환자를 봐야 함을 의미하는 시간.
더불어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시간 중 하나였다.
2달간 크고 작은 일들이 나에겐 일어났었다.
첫 달에 나를 그토록 태우던 사수는 돌연 나를 가르치는 마지막 날 이후로 응급 사직을 했고, 새로운 사수는 나를 태우진 않았지만 '한 달 했으니 이제 다 혼자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강하신 분이라 이 일을 해내기에는 늘 시간도 나 자신도 너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응급실에서 보호자와 환자의 폭언에 시달렸고, 출근한 지 30분 만에 보호자에게 욕을 들으며 머리채를 잡힐뻔해 보안요원과 남자 선생님들이 나를 보호해줬던 일도 있었다. 그토록 원하던 환자 곁인데 나는 늘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고 조금씩 지쳐 가고 있었다.
환자를 가장 먼저 위하는 간호사, 그다음 간호사를 위해 목소리 내고 행동할 수 있는 간호사가 되는 것
간호사로 사는 인생을 선택했을 때 내가 가졌던 저 마음이 내 할 일 해내기에도 버거워 감춰지고 미뤄지고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아서 늘 마음 한편이 무거웠던 것 같다.
응급실에는 정말 응급한 환자들도 많지만, 평일에 외래를 기다리기 싫어서나 입원실을 빨리 받고 싶어서 등등의 이유로 경증의 환자들도 많이 찾아온다. 이로 인해 늘 포화상태인 응급실은 전쟁터와 다름없고 10개의 침상을 담당하는 내가 한 근무시간당 보는 환자수는 최소 20~25명 많을 때는 30명에 이르렀고 두 시간 일찍 가고 한두 시간 늦게 퇴근하는 생활에 12시간 정도 근무를 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정신없이 퇴원시키자마자 금세 찾아오는 새로운 환자를 파악할 여유는 늘 신규인 나에게 부족했고, 검사며 약을 챙기기 급급하다가 인계를 하면서 혼나가며 이 환자가 어떤 환자였는지 알아갈 수밖에 없는 내 현실이 너무 버겁게 느껴지는 때가 많았다.
내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늘 가득했고 똑같이 피곤했던 어느 퇴근길 우연히 같은 병원에 3월부터 입사해서 일하고 있는 내과계 중환자실 학교 동기를 만났다.
"어때? 프리셉터(사수)는 좋아? 할만해?"
"언니... 나 있잖아.. 간호사 괜히 된 거 같아. 어떡하지..?"
동기들 중에서도 똑 부러지고 똑똑하고 정말 즐길 줄 알았던 친구, 정신없이 바쁜 간호학과 생활에 무려 1년 동안 과대를 도맡아 했을 만큼 든든한 동기에게 뜻밖의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근데 나도 내가 좋은 간호사가 못 될 거 같다는 마음이 순간순간 들어. 우리 집 옆에 편의점이 있는데 출근길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물건을 채우는 모습이 너무 즐거워 보이는 거야. 내가 간호사로 살지 않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살았다면 지금보다는 더 행복할 거 같다는 그런 생각이 막 들면서 출근길부터 눈물이 나더라."
내 말을 들은 동기는 눈물을 흘렸다.
"우리 어떡하지? 난 실습할 때 선생님들 보면 프로페셔널하고 멋있고 나도 막 저렇게 되고 싶고, 환자 보면 내가 나중에 간호사가 돼서 저런 생명을 살릴 수 있구나 생각하면서 좋았는데.. 막상 닥치니까 나는 바보고 매 순간이 사고 칠까 봐 너무 무서워"
동기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떤 기분일지 너무나도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4년간 동고동락하며 같은 것을 배우고 같은 곳에서 실습했고, 같은 병원으로 입사했기에 부서는 달라도 어려움들이 충분히 공감이 갔던 순간이었다. 나도 힘들고 동기도 힘들어 누구 하나 서로를 위로하는 말이나 용기 내보자는 말은 하지 못했지만, 같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눈물을 흘렸을 때 감정이 정화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던 날이었다.
두 달의 수습과정이 있었지만, 쉬는 날을 제외하고 실제 근무일은 약 한 달이 조금 넘는 정도이다.
이 시간 동안 모든 과의 환자들이 방문하는 응급실에서의 간호를 다 익혀서 혼자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병원은 늘 인력이 부족했고 다음 달 내가 독립하자마자 또 새로운 신규 간호사가 입사하게 된다고 하니 그저 오늘도 큰 사고 치지 않기를... 죽을힘을 다해 버티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세상의 모든 신규 간호사가 연차가 높은 간호사가 되기까지 나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 거라고 믿고 싶다.
내가 유독 더 힘이 들고, 내가 유독 더 어렵고 지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간호사들이 나와 비슷했으리리라고 믿고 싶다.
내가 간호사로서 꿈꾸는 내 모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너무도 멀고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늘 그랬듯 세상에서 가장 나를 진심으로 믿어주고 기다려주시는 부모님, 나와 함께 노력하고 있는 의리 있는 동기들, 그리고 늘 나에게 따뜻한 난로처럼 위로와 힐링을 하게 해주는 남자 친구의 응원을 생각하며 내일도 나는 병원으로 향한다.
부디 내가 간호사로서 사는 삶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잘 버텨낼 수 있길 바라며...
내가 하나의 생명을 오늘도 살릴 수 있는 가치 있는 사람으로 한 몫하는 간호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