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환자를 만나며
작년 이맘때 쯤 나는 산부인과 병동 실습을 나갔다.
부인과 질환과 여성암과 힘겹게 싸우는 수많은 환자분들을 만났고 새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는 수 많은 임산부들과 함께 한 실습이었다.
그 중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환자가 있다.
인계를 함께 듣던 중 간호사 선생님으로 부터 들은말...
17살인데 아이를 모텔에서 낳았대. 애 아빠가 자기 애 아니라고 부정한다더라고..애도 아파.. 애가 무슨 죄야 정말...
산부인과 실습 중 미쳐 생각지도 못한 환자를 만났다. 17살에 늘씬하고 예쁜 그 환자는 출산을 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환자에게 혈압과 체온을 직접 재러가며 말했다.
"애기가 엄마랑 많이 닮았나요? 너무 이쁠것 같아요"
"저 입양 보낼거예요. 분명 쟤 남자친구 아이가 맞는데...자꾸 아니라네요.."
무슨말을 해줘야 할지 잠시 가슴이 먹먹하고 머리가 멍 해졌다..
그래도 정서적 지지야 말로 학생간호사일때 가장 많이 해줄 수 있는 간호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많이 두려우세요?"
그러자 울면서 말했다..
"임신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원래 생리가 불규칙해서 몇달 안해도 그러려니 했죠..살도 안쪘고 술도 계속 마시고 담배도 폈어요.
6~7개월쯤 배도 불러오고 이상하다고 느끼면서 알아챘죠..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어요..."
"혼자라는 생각에 많이 힘드셨겠어요.."
"네..정말..배가 너무 아프고하니 곧 아이가 태어나겠구나...무서워서 혼자 모텔에 가서 낳았어요.. 어쩔 줄 몰랐죠..태반도 제 손으로 당겨서 뜯어냈어요.. 아이를 버릴 수가 없어서 일단 응급실에 데려가서 길에서 발견했다고 말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고등학교1학년..친구들과 한참 추억을 쌓을때..엄마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무겁고 두려울 그 환자에게 나는 따뜻한 포옹과 2시간여의 긴 대화를 나누었고 아이를 남자친구에게 보여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몇일 뒤 환자의 남자친구와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아이의 머리카락을 가져갔고, 얼마지나지 않아 함께 키우겠다며 환자와 남자친구는 퇴원하고 아기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남은 치료를 받았다.
그 이후의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어디에서든 미혼모라는 시선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아이를 키우며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삶을 살고있을 것이라 믿는다.
병원은 다양한 사회적계층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학교가 작은 사회라면 병원은 사회의 모든 구성요소를 한번에 볼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이 실습 당시 한가지 안타까웠던 것은 의료진들의 편견없는 시선이 부족했다는것,그리고 그런 환자들을 위한 사회적 체계 역시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모든 환자는 직업,종교,인종,재산,문화에 의해 차별 받지 않고 평등하게 의료를 제공 받을 수 있는 의료의 형평성은 비단 물질적으로 제공되는 의료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제공되는 의료와 간호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