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 읽는 여자 Sep 12. 2023

강아지 왔는가

큰엄마의 호칭

세상 누구도 나에게 '강아지'라고 부르지 않았고, 지금도 부르지 않고, 앞으로도 불리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강아지'라고 부르던 세상 유일한 사람은 큰엄마였다.


강아지 왔는가


큰엄마는 나의 언니, 나의 동생에게는 이름을 불렀다. 큰엄마의 아들도, 딸도, 손자, 손녀도 모두 이름을 불렀다. 물론, '첫째야 혹은 큰애야, 작은애야 하고 다른 호칭을 부르기도 했지만 '강아지'라고 부르진 않았다. 모두들 알았다. 큰엄마가 '강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걸. 큰엄마는 아주 대놓고 나를 편애했다.


엄마, 아빠는 꽤나 잘생긴 외모를 지니고 있다. 언니는 엄마, 아빠의 유전자를 100% 받았다. 큰 눈과 오뚝한 코, 하얀 피부, 어린것이 저렇게 생겼으니 얼마나 예뻤겠는가. 세 살 아래인 나는, 엄마, 아빠의 유전자를 100% 받지 못했다. 작은 눈, 작은 코에, 하얀 것과는 거리가 아주 먼 피부... 다들 예쁜 언니만 예뻐했다. 나는 예쁜 언니랑 하나도 닮지 않아서 다들 처음엔 '머슴애'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머슴애 같은 나를 큰엄마는 예뻐했다. 사람들은 큰엄마와 나를 보고 수군거렸다.


"삼바실댁이랑 조카랑 누가 보면 엄마랑, 딸이라고 하겄어."


그때마다 큰엄마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셨고,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좋아하는 큰엄마를 보고 웃었다.


그렇다. 나는 엄마, 아빠가 아니라 큰엄마를 닮았다. 큰엄마의 외모뿐 아니라 큰엄마의 성격까지도 닮았다. 큰엄마는 유독 시원시원한 성격이어서, 동네 사람들이 큰엄마를 대장부라고 불렀다. 게다가 큰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았고, 맛있는 음식을 한가득해서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음식에는 늘 술이 빠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삼바실댁의 시원시원한 성격에 다들 배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푸짐해져 돌아가곤 했다. 내가 왜 이런 걸 기억하고 있느냐면, 나는 끄떡하면 친구네 집이 아니라 큰집에 놀러 가곤 했기 때문이다.


내가 대문을 열고 "큰엄마!"하고 부르면, 큰엄마는 부엌에서든 뒤꼍이든, 채전밥이든 어디에 있던 큰 소리로 외쳤다.


"강아지 왔는가"


나는 그 소리만 듣고도 큰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알았다. 큰엄마는 큰아버지와, 친할머니 이렇게 셋이 살고 있었다. 나는 큰집과 한동네에 살았는데, 어린 내 걸음으로도 5분이면 큰집에 닿았다. 큰엄마는 큰아버지를 무서워했다. 내가 큰엄마는 뒤에 엄마를 붙이고, 큰아버지는 뒤에 아버지를 붙이는 이유가 있다. 나도 큰아버지는 무서웠다. 큰아버지는 성격이 불같았고,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고, 화가 머리끝까지 오르면 쓰러지기도 했다. 큰엄마는 고혈압인 큰아버지가 쓰러질까 조심조심했고, 큰아버지의 역정에도 끽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나는 내가 힘이 있다면, 큰아버지를 혼내주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우리 큰엄마를 큰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못살게 구는 사람이었다.


내가 도시로 학교에 가고, 직업을 가지면서 큰엄마를 볼 기회가 줄어들었다. 언제고 우리 큰엄마 내가 호강 한 번 시켜주고 싶었는데 그 기회가 쉽사리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게도 큰엄마의 부고를 들었다.


큰엄마는 자살했다.


나는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다. 장례식장에 가니, 큰아버지가 나를 보고 울었다.


"내가 너희 큰엄마 죽였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너무나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어서 통곡했다. 내가 간간히 큰엄마에게 전화하면 큰엄마는 삼시세끼 큰아버지 식사 챙기느라 힘들어했다. 당시 큰엄마는 무릎이 아파서 거동이 많이 불편했는데, 입 짧은 큰아버지는 삼시 새로 지은 밥에 국이 있어야 식사를 하는 분이었다. 나는 그런 큰아버지가 너무 미웠다. 얼마나, 힘드셨으면, 방법을 못 찾으셨으면, 우리 다정한 큰엄마가 죽음을 선택했을까.


장지에는 동네 아저씨들이 잔뜩 와있었다. 그들은 모두 큰아버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었다. 큰아버지는 모두에게 미움받는 존재였다. 그 미움을 자처한 사람은 큰아버지였고.


"삼바실댁한테 얼마나 음식을 얻어먹었는데. 음식을 얼마나 맛있게 해 줬어. 삼바실댁만큼 음식 잘해 준 사람 없어. 우리 마누라보다 더 잘해줬는데."


우리 큰엄마가 음식으로 쌓은 공덕이 오늘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싶어서 눈물이 났다.


'큰엄마, 우리 큰엄마 음식 그렇게 잘하더니, 오늘 이렇게 그 보람했네. 나도 우리 큰엄마 음식 진짜 많이 먹었는데. 우리 큰엄마가 해주는 김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데.'


나는 이제 더 이상 '우리 강아지 왔는가' 소리를 이생에서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큰엄마는 그렇게 쉽게 나를 떠날 사람이 아니다. 신기하게도 죽은 우리 아빠는 내 꿈에 나타나질 않는데 큰엄마는 종종 내 꿈에 나타난다.


"강아지, 우리 강아지 왔는가. 우리 강아지 좋아하는 김치 담가놨어야. 우리 강아지는 익은 거 좋아한당게."


내가 좋아하는 큰엄마표 익은 김치를 먹으면, 우리 큰엄마가 옆에서 말한다.


"우리 강아지, 복스럽게도 잘 먹네. 내가 우리 강아지 보는 맛에 산다잉."


나이가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도 강아지라고 불리고 싶다. 단 한 사람, 우리 큰엄마에게만.


+

사진 출처: Unsplash, Parttimepotrait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