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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Nov 17. 2023

아이브 안유진 숏단발 해주세요

중년의 머리스타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머리 스타일은 숏컷이다. 가장 좋아하는 머리 스타일과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이 일치하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내게 어울리는 스타일은 숏단발이다. 숏컷은 머리 두상이 예쁘게 태어났거나, 예쁜 두상을 만들 수 있는 스타일링이 가능한 황금손을 가졌을 때만 가능하다. 물론 패션의 완성도 얼굴이요, 머리 스타일의 완성도 얼굴임을 모르지 않지만...


아무튼 지간에 나는 언제나 숏단발이었다. 숏단발은 한 달에 한 번씩은 머리를 잘라줘야 한다. 안 그러면 머리끝이 몹시 지저분해진다. 게다가 내 머리는 반곱슬이라 서너 달에 한 번씩은 볼륨매직을 해줘야 역시나 한 달에 한번 컷과 같은 이유로 지저분해지지 않는다.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면 거울 보기도 겁나고, 밖에 나가기는 더더 겁난다. 


그랬던 내가, 남편의 뜬금 한 마디에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그게 4년 전이다. 나를 만날 때부터, 결혼하고 10년 가까이 나의 숏단발을 봐온 남편이, 어느 날 조용히 말했다. 


"여보, 머리 한번 길러주면 안 돼?"

"왜? 나는 짧은 머리가 좋은데."

"자기 긴 머리 하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싫은데. 나는 짧은 머리가 어울려."


그래놓고, 남편의 뜬금없이 진지한 부탁에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미용실도 못 가게 된 터라, 어쩔 수 없이 머리를 기르게 되었다. 등짝에 붙는 머리카락의 느낌을 정말 오랜만에 느껴봤다. 머리를 숙이면 머리카락이 양얼굴을 덮는다. 긴 머리는 생각보다 관리가 편했다. 그냥 기르면 됐고, 묶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4년이란 세월을 긴 머리로 보냈다. 


"여보, 이제 머리 잘라도 돼. 자기 하고 싶은 머리 해."

"오잉? 왜?"

"자기 짧은 머리 좋아하잖아."

"싫은데, 이제 긴 머리 괜찮은데."


그래놓고, 남편의 뜬금없는 긴 머리 해지령에 미용실에 갔다. 4년 전, 숏단발 사진을 단골 미용실 원장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잘라달라고 했다. 완성된 머리는 4년 전 나의 숏단발이 아니라 중단발이었다. '아니, 내가 사진까지 보여줬는데... 이게 뭐지...' 실망스러웠다. 남편과 아이들은 많이 짧아졌다고 했지만, 내가 원한 건 숏단발이었다. 연예인 사진을 찾아보니, 원장이 해놓은 머리는 웬디의 중단발과 비슷했다. '내가 보여준 사진은 숏인데, 나는 숏단발이 하고 싶은데...'


그게 여름의 일이었고, 겨울이 올 때쯤 다시 미용실에 가기 위해서 이번엔 만반의 계획을 세웠다. 내가 하고 싶은 스타일에 대해 검색하다 보니, 내가 원하는 머리는 '안유진 숏단발'이었다. 아이브 안유진이 최근 머리를 잘랐는데, 그 머리 스타일이 딱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었다. 안유진이야 얼굴이 예쁘니까 무슨 머리 스타일이든 예쁘지 않겠는가만은...... 미용실에 가서 이렇게 말하면 되겠구나. '안유진 숏단발 해주세요.' 그런데, 생각만 해도 벌써 부끄럽다. 


"아이브 안유진 숏단발 해주세요." 역시나 부끄러웠다. 중년의 아줌마가 아이브라니, 안유진이라니......


원장은, 바로 핸드폰 검색해서 내게 보여준다. 


"이 머리요?"

"네."

"엄청 짧아지는데 괜찮으세요?"

"제가 원하는 게 엄청 짧은 거예요."

"이거 관리 어려우실 텐데. 끝 부분 레이어드 컷트 들어가면, 까질 수 있고요."

"제가 미용실 오는 거 좋아해요. 머리 까져도 괜찮고. 한 달에 한 번씩 와서 커트하고, 서너 달에 한 번씩 볼륨매직 하면 되죠?"


레이어드 컷트를 하고 볼륨매직을 한다. 나의 4년 전 사진으로는 내가 원하던 머리 스타일을 구현하지 못하던 원장이, 안유진 머리를 보고는 찰떡같이 해낸다. 안유진이 중년의 아줌마 하나를 구원했다. 


이제 나는 큰 이변이 없는 한 안유진 숏단발로 쭉 살 것 같다. 아이브 안유진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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