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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Nov 22. 2023

100일간 영어 공부하고
해외여행 가자

영어 공부 싫어하는 초6에게 영어 걸음마 떼게 하기

 올봄,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아이의 학부모 공개 수업에 갔다. 조를 구성해 논설문 주제를 정하고 PT로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조원들은 각자 주제 조사, 내용 정리, PT 만들기 등의 역할을 맡았다. 학부모 공개 수업 날엔 각 조별로, 조원들이 모두 앞에 나와서 발표를 했다. 그중, 한 아이가 유독 눈에 띄었는데 (우리 아이 말고, 남의 아이가 눈에 띄었다), 유창한 영어 발음 때문이었다. 아이들 뿐 아니라 학부모들도 웅성거릴 만큼 영어 발음이 끝내주게 좋았다. 


 그날 저녁, 아이와 학부모 공개 수업 후기를 나눴다.


 "엄마, 걔 영어 진짜 잘하지?"

 "응, 걔는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 한데?"

 "영어 학원 다닌데. 나는 망했어."

 "왜? 망해?"

 "나는 영어 읽지도 못하는데, 내년에 중학교 가면 나는 이제 어떡해?"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교과 과목으로 영어를 배우고 있지만, 영어엔 늘 자신 없어했다. 학원이나 학습지는 전연 하지 않고 있다. 아이가 학원에 다니거나 학습지 하는 걸 너무 싫어해서 둘 다 자발적으로 안 하고 있다. 그렇다고 영어 책이나 문제집까지 사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이 수준에 맞는 혹은 아이가 흥미를 붙일법한 여러 영어 책과 영어 교재를 사서 아이 앞에도 아이 옆에도 늘 놓아주긴 했다. 그러나, 한 두 페이지만 넘겨볼 뿐 어렵다고, 재미없다고 늘 내팽개치기 일쑤였다. 그런 책들이 책꽂이에, 책상에, 방바닥에 한 무더기다. 내가 학원만 안 보냈지, 학습지만 안 시켰지... 영어 공부에 돈까지 안 쓴 건 아니다.


 이런 과거가 있는데, 아이는 내년에 중학교 가서 영어 공부 어떻게 할지 걱정을 하는 것이다. 영어 공부 시도도 하지 않고, 걱정부터 하는 건 왜 때문인데...


 어느 날, 아이 가방을 세탁하려고, 가방에 든 물건을 정리하다 기겁했다. 영어 수업 시간에 시험 본 프린트물 영어시험지였다. 단어를 몰라서 틀린 건 이해를 하는데, 알파벳조차 엉망이었다. b와 d를 헷갈리고, 대 소문자 구별도 잘 되지 않았다. 이런 총체적인 난국이... 그래서 중학교 가면 영어 공부 어쩌나 걱정을 했구나... 이런 수준이니 걱정을 안 했으면 그게 더 문제였겠다...


 기존에 사뒀던 영어 문제집은, 아이 수준에 맞는게 없었다. 지금 아이 수준엔 너무 어려웠다. 알파벳도 잘 모르는 아이니...


 초등 영어 첫걸음, 알파벳 수준의 문제집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여기에 보상을 아주 센 걸 걸었다. 문제집 한 권을 다 마치면 해외여행을 보내주기로 했다. 


 "엄마, 알파벳부터 시작해서 언제 따라가?"

 "응. 엄마도 알지. 급하지 급해. 근데 알파벳에서 헤매면 다음 진도가 안 나가. 엄마 믿고 알파벳부터 해보자. 이 책으로 알파벳 떼고 나면 해외여행 가자. 우리 해빈이 가고 싶은 곳, 무조건 가자."

 "진짜지? 딴소리하기 없기?"


 영어 공부 습관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아이에게 영어 공부를 시키기 위해 나는 매일 알람을 맞춰놓고 일정한 시간에 아이에게 영어 공부를 시켰다. 


 "해빈아, 영어 공부 할 시간이네."


 아이는 자신을 위한 공분데도, 아이답게 만날 영어 공부하는 걸 까먹었고, 빼먹고 싶어 했으며, 영어 공부 하는 걸 싫어했다. 진짜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이놈의 시키... 진짜...'


 그렇게 알파벳 책 한 권을 진짜 정말 정말 힘들게 뗐다.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서 한 영어 공부였고, 혼자서 뗀 영어책이었다. 겨우 알파벳이지만 아이는 뿌듯해했다. 아이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해외여행'이라는 달콤한 보상이었다.  


 "엄마, 바다 보이고, 개인 수영장 있고, 호텔 좋은 곳으로 해외여행 가자."


 그래서, 일본 오키나와의 나하 쉐라톤 호텔로 해외 여행을 다녀왔다. 40평생 한번도 누려보지 못했던 호캉스를 아이 영어 공부 덕분에 해외에서 누렸다. 덕분에 6개월 할부로 끊은 호텔비를 아직도 내느라 허리가 많이 휘었다. 아무튼 여행 이후,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번엔 초등학교 영어 회화 책이었다. 100일로 이루어진 문제집이었고, 역시나 이번에도 100일 영어 공부를 마치면 해외여행이라는 보상을 걸었다. 


 "엄마, 이번 여행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베트남 음식 맛있다는데 베트남으로 가자."

 "그래, 100일 공부 마치고 베트남 가자. 가."


 아이의 두 번째 영어 공부책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회화로 이루어진 책이었다. 하루에 한 장씩 생활 영어 문장을 다운해 둔 MP3파일로 듣고, 따라한 후 문장을 외우고 관련 단어들도 외웠다. 혼자 공부하고 난 후에는 거실 화이트보드에 외운 문장과 단어를 쓴 후 나에게 검사를 받는 시스템으로 100일을 보냈다. 알파벳 문제집과 다르게, 이번 영어 책은 회화라 아이가 공부하기에 좀 벅차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다. 실제로 아이는 처음 2주간은 몹시 힘들어했다. 그때마다 당근은 역시나 해외여행이었다. 


 100일 영어공부가 80일에 가까워지면서 나는 아이의 분명한 변화를 목격했다. 아이가 스스로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내가 영어 공부 하라도 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를 했다. '이런 대견스러울 수가...' 인간은 변하기 어렵지만, 인간은 변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아이의 영어 공부를 통해 체험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아직 지난 번 해외여행 할부도 안끝났는데 또 해외여행을 가게 생겼네...'라는 돈걱정을 하기도 했다.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돈이야 벌면 되지. 우리 해빈이 대견하네. 1월에 보너스 나오니까 그걸로 갔다 와."


 아이는 100일이 가까워 오면서 영어 자존감이 엄청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100일이나 언제 다 하지 했는데, 이게 진짜 끝이 오네. 엄마, 나한테 영어로 물어봐. 내가 다 대답할게."


 학교 영어 수업 태도도 달라졌다. 전엔 영어 시간도 싫고, 영어 선생님도 싫다며 늘 투덜대던 아이였다. 


 "엄마, 영어 쌤 너무 재밌어. 영어 시험문제도 많이 맞아."


 갓난쟁이 아이가 100일이 지나면 달라져서 '100일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곰도 100일간 마늘과 쑥을 먹으면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처럼 알파벳도 모르던 초등학생도 100일간 영어공부를 했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는 겨울방학 때 베트남 여행권을 얻어놓고, 초등 영어 독해집을 시작했다. 이제 아이는 해외여행이란 보상이 필요 없어졌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영어에 자신감 없는 자신이 아니라, 영어에 자신감 있는 자신을 위해 스스로 공부한다. 


 아이의 영어 공부에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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