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원 덜 벌고 100만 원 덜 썼더니
알바 잘리고 강제 절약하는 생을 살아보니
6월 말로 나름 꿀 빨던 알바에서 잘렸다. 2020년 1월에 시작해 2023년 6월까지 3년 6개월을 했으니 단기 알바는 아니었다. 중년의 나이에, 초등 저학년과 고학년 두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의 선택지는 아주 좁고 좁았다. 아니지, '선택'이라니... 그저 '후택' 되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나는 방송 모니터 알바를 했었다. 하루 3시간가량, 특정 채널의 방송을 보고, 내용을 써머리 하고, 방송심의에 걸리는 내용을 잡아내는(?) 일이 주요 업무였다. 대가는 최저시급보다 조금 많은 수준이었다. 하루 3시간 한 달 일하면 세전 100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모니터 알바는 돈도 벌 수 있지만, 무엇보다 집에서 일하고, 시간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 둘 키우는 엄마 입장에선 꿀알바였다.
그러던 꿀알바를 잘리니 많이 당황스러웠다. 한편으로, 3년 6개월간이나 하루도 빠짐없이 정해진 채널의 프로그램을 보고, 모니터를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없지 않았다. 모니터를 안 하는 하루는 꽤나 길고 행복했다. 맞다. 백수의 하루는 몹시 길고 행복했다. 돈이 없지, 시간이 없나, 행복하지가 않나...
알바에서 잘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친척 장례식에 갔더니 사촌 오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너, 요즘 무슨 일 하냐?"
"저 요즘 놀고 있는데요."
"너 같이 고급인력이 왜 놀아?"
"저 논 지 세 달밖에 안 됐는데."
논다고 말할 때의 쾌감을 잊지 못한다. 물론, 돈을 벌지 않을 뿐 아이들 키우며 집안 일 하고, 공부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온갖 일을 하고 있다. 마냥 놀고 있는 상태는 아니다. 그럴 상황도 안되지만. 나는 얼마 전의 모니터 알바를 비롯해 늘 일을 하는 상태를 유지했었다. 그랬던 내가 논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서, 그런 내가 참 좋았다.
돈벌이를 하지 않은 지 5개월 차가 되어간다. 알바에서 잘린 이후, 쎈 결심을 했다. 알바로 벌던 100만 원만큼 덜 쓸 결심. 그게 될까 싶었다. 쓰던 버릇이 있는데... 그래서 쎈 결심을 해야 했고, 구글 똑똑가계부 앱과 종이 가계부를 철저하게 관리했다. 안 그럼, 잘린 알바의 100만 원만큼 우리 집 가계는 구멍이 100만큼 날 것이기에.
7월은 첫 달이기에, 그동안 사놓았던 것들이 혹은 쟁여진 것들이 있어서 100만 원 덜 쓰는 게 할 만했다. 그런데 8월은, 아이들 방학에, 휴가까지... 100만 원 덜 쓰기가 몹시나 힘들었다. 그래도 꿋꿋이 버텨냈다. 9월은, 에효~추석이 있지 뭔가... 그럼에도 100만 원 덜 쓰기 성공. 10월은 행사가 없으니 좀 쉽겠지... 싶었는데, 인생은 어쩌면 그렇게 변수가 많은지... 10월엔 경조사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11월, 이번 달은 좀 쉽겠지... 했는데 그럴 리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의 겨울옷(겨울옷들은 왜 이렇게 비싼지...)을 장만하느라 또 휘청휘청... 그럼에도 또 100만 원 덜 쓰기에 성공해가고 있다.
그렇게 5개월 차 백수는 100만 원 덜 쓰기로, 100만 원 벌던 시절보다 오히려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일을 안 하는데, 돈을 안 버는데, 딱 벌던 만큼 덜 쓰고 있다.
알바 잘렸을 땐, '망했다... 이제 어떻게 살지?'싶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살아진다. 게다가 덤으로 게을렀던 내가 성실해지기까지 했다. 일을 안 해서가 아니라, 벌던 돈만큼 덜 쓰려고 궁리를 하다 보니, 나의 삶에 조금 더 성실해졌다. 맞다. 성실해지지 않으면, 가계부에 구멍이 난다. 마음에도 구멍이 나서 몹시 괴롭다. 그걸 알기에 오늘도 우리 집을, 내 삶을, 우리 아이들을 성실히 돌본다.
세상에나! 꿀 빨던 알바 잘려서 100만 원 덜 벌고, 100만 원 덜 썼더니 오히려 인생이 더 달다. 달아. 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