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회사에 적응했냐고?
명문대와 대기업을 다니다 돌연 술집 차린다고 뛰쳐나온 여자 사람 이야기
구미에서 일은 잘 맞았냐고 물으면 나쁘진 않았다.
그러나 무언가 자꾸 아쉬움이 생겼다. 아무래도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일이 지겨워진 것도 있었고, 일에서 오는 만족감이 충족되지 않았다. 그냥 월급 받는 만큼 일하고 시키는 일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건데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일에서 내적 만족감을 얻고 자아를 실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원래는 퇴사하고 진학하려고 했던 대학원을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웬 대학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남들보다 대학교 휴학을 오래 했다. 2년의 휴학 기간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다양한 일을 했다. 그때 중학교 방과 후 교사와 종합병원 인사팀 인턴을 1년간 했는데 그때 내가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을 좋아한 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상담 교육 대학원을 갈까 생각했으나, 상담교육을 시작하기엔 학부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박사과정까지 밟아야 했다. 그러려면 비용과 시간을 고려 안 할 수가 없었는데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절충안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회사 내 교육팀과 연관된 인적자원개발(기업교육)을 전공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팀장님께 면담 신청을 했다. “팀장님 저 다시 서울로 올라가겠습니다.” 다행히 팀에서도 나의 선택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고 큰 무리 없이 나는 30살에 다시 본사로 복귀했다.
시작이 좋았다.
그렇게 본사에 올라와 협력사 노무 관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생전 인사관리는 해본 적도 없었는데 시작부터 난이도 상인 팀에 발령받게 된 것이다. 어찌 됐든 내가 선택해서 간 곳이기에 하나하나 다시 시작하자 굳게 맘먹었다.
그러나 이곳은 정글이었다. 인사, 노무 역량은 기본 협력사 비용, 계약 업무도 해야 하므로 회계 능력까지 있어야 했다. 이제껏 내가 한 일이라 고는 엔지니어로서 장비 다루는 일 밖에 안 했는데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내가 지금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10년의 회사생활에서 제일 열심히 했던 때를 고르라면 이때를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그만큼 개고생도 많이 했지만 가장 내가 성장했던 시기가 아닐까 싶다.
내가 서울에 다시 올라온 목적이 또 하나 있지 않았던가. 바로 대학원 진학. 새로운 업무에 적응과 동시에 부랴부랴 대학원 전공 공부와 자기소개서를 준비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고, 딱 두 군데만 지원했다. 그 결과 제일 원했던 학교에 최종 합격했다. 진짜 이제는 내 인생이 술술 풀리는 일만 남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