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의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나는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대구 시민들은 전국적인 대기업보다 지역 기업을 이용하려는 경향이 강해서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대구에는 대구은행, 대구백화점 지점이 동종업에서 가장 많았다. 서울로 가지 않고 고향에서 일을 하는 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보는 분위기도 있었다. 이를 보여주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1994년, 고등학교 입학식을 하는 강당이었다. 교감선생님이 1학년을 담당하는 교사를 소개하면서 출신대학까지 자상하게 공개했다.
“수학 담당 000 선생님은 경북대학교 수학교육과를 졸업하셨습니다”
이런 식이었다. 호명된 10명이 넘는 교사가 모두 경북대학교 출신이었데, 윤리 선생님만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분이었다. 이를 두고 나중에 친구들과 주고받은 이야기가 기억에 난다.
“윤리샘은 왜 경북대를 안 가고, 연세대를 갔을까?”
“연세대가 더 좋으니까 갔지.”
“아냐, 성적이 되어도 경북대 가는 사람 많아. 우리 사촌오빠도 그랬는데?”
“우리 삼촌도 그래.”
연세대를 갈 수 있는 성적으로 경북대를 선택한 게 궁금한 게 아니라, 경북대를 가지 않고 연세대를 간 이유를 궁금해하다니. 고3이 되었을 때는 생각이 달라졌지만, 당시 친구들과 했던 대화를 돌이켜보면 사고의 기준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우리 생각이라기보다 대구에 사는 어른들의 의견이었다. 또는 그 어른의 부모의 의견이거나. 보수는 이렇게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지역의 정서를 먹고 자란 나에게 잊지 못할 장면이 하나 있다. 2009년 4월 30일, 노무현 대통령이 봉화마을에서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로 이동하는 버스를 타는 장면이었다.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습니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가서 잘 다녀오겠습니다.”
바로 일 년 전까지 대통령이었던 분이 검찰조사를 받으러 가는 길,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지고 이 모습이 뉴스에 생중계가 되고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데 고개 숙여 사과를 하는 그분의 모습이 낯설게 다가왔다. 이제까지 내가 본 정치인과 달랐고, 모멸감을 참고 담담하게 말하는 태도에서 특별한 면모가 엿보였다.
당시 나는 정치에 관심도 없고, 지역의 정서에 젖은 사람이었다. 그런 내 눈에도 그분의 표정과 행동에서 초월한 기운을 느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분이 이미 마음속에 결심한 것 때문인지 모르겠다. 버스에 타기 전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을 응원하는 시민들을 향해 특유의 온화하고 소탈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이 애잔하게 남았다.
내가 인상 깊게 본 또 한 명의 정치인은 유시민이다. 유시민 작가의 첫 기억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제로 한 TV토론회에서였다. 유시민은 여당 국회위원으로서 참담한 심경임에도 논리와 객관적 근거로 반박해 나갔다. 패널로 나온 한나라당 의원이 하나의 자료를 들어서 주장을 하면, 유시민 의원은 해당 자료를 전체 맥락에서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해석해 주었는데, 잘 모르는 내가 들어도 이해가 되었다. 같은 자료를 두고도 상반된 주장을 펼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정치인들의 말에 얼마나 속기 쉬운가 하는 걸 깨달았다.
한나라당 의원의 말은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자기에게 유리한 자료만 편집해서 사용했다. 또한 자기가 들고 나온 자료인데도 불구하고 반박하지 못하는 데서 앞뒤에 있는 내용은 몰랐거나 전체에서 의미를 추론해 낼 능력이 없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유시민 작가는 정치를 그만두고, 본업인 글쓰기를 하면서 TV토론에 패널로 참여하고, '알릴레오 북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오고 있다. 그가 정치인이 아닌 시민으로 토론장에 꾸준히 참여하는 동안 보수 패널은 무수히도 바뀌었다. 주로 현직 정치인이나 언론인이었다. 현직 정치인은 당을 대변하거나 자신의 홍보가 목적이고, 언론인은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을 대표해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유시민 작가는 정치인도 아니고, 직업 언론인도 아니다. 자신의 직위와 이익과 관련이 없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손해가 크다.
글을 쓰려면 모든 집중력을 끌어모아야 한다. 몸과 정신을 최상의 상태로 두고도 그 일은 늘 쉽지 않다. 내 경우에는 남의 험담을 하고 나면 부정적인 기운이 남아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을 몇 번 경험한 후 나는 남의 얘기를 잘하는 사람과 만남을 자제하게 되었다. 글 쓰기 전에는 전화 통화도 가능하면 하지 않고, 마음을 여유롭게 가지려고 노력한다.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아니 무슨 말을 해도 욕을 먹을 수 있는 일을 그토록 오래 하는 건 자신의 많은 부분을 내어놓는 일이다. 정치를 그만두고도 12년, 총알 자국으로 너덜한 채로 돌아와서 글 한자 쓰지 못하는 여러 날을 감수했을 것이다.
그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을 보수 언론이 편파적으로 공격할 때 전면에 나서서 바로잡아 주는 사람과 언론이 없었다. 있어도 힘이 약했거나 진보정당 정치인의 말이라며 믿어주지 않았다. 정치인이 아니면서,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힘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절실했을 것이다.
“2022년 3월 9일, 한국 유권자는 ‘위선’이 싫다고 악을 선택했다.”
“세상을 위해 사는 것 같았던 사람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무엇인가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모두가 비난한다. 보수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라 욕하고 진보는 당신이 그럴 줄 몰랐다며 분개한다. 윤석열은 이것을 노렸다. 언론에 정보를 흘려 조국 가족을 파렴치한 범죄 집단으로 낙인찍었다.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도 돌을 던졌다. 노무현과 노회찬이 목숨을 거둘 때 벌어졌던 것과 똑같은 장면이었다.”
"옳게 살려고 했으나 완벽하지 못했던 것은 위선이 아니다. 선하고 정의롭게 살려고 마음먹은 사람도 실수를 하고 오류를 저지른다.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행동도 한다. 완벽한 선, 완전한 언행일치를 이루어야 위선자라는 비난을 면할 수 있다면, 누가 감히 사회적 악덕을 바로 잡자고 나설 수 있겠는가."
그의 저서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에 있는 문장이다. 이 부분을 읽고 자연스러웠던 그 모든 일들을 의심하게 되었다. 나에게 익숙했던 것들은 내 것이 아니었던 게 아닐까. 생경하고 낯선 것 안에 내 생각이 있는지 모른다. 부자연스러운 행보를 하는 이들에게 진실과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