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초밥이의 옷차림이 걱정된다며 내가 좀 신경을 써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상이 무섭잖아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선생님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다른 학생들이 초밥이를 따라 할까 봐 염려된다고 했는데, 어쨌거나 학급 학생들의 안전과 분위기를 신경 써야 하는 입장에서는 문제로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초밥이의 옷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12살부터 여자이기 때문에 옷차림에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그 정도로 위험한 사회라면 그렇게 만든 어른들이 개선해야지 개인이 옷차림을 단속하는 걸로 해결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나는 초밥이한테 옷은 그대로 입되 선생님이 “왜 또 짧은 바지를 입고 왔어?”라고 하면 “죄송합니다”라고 하라고 했다. 다음에 또 지적을 받으면 “죄송합니다. 빨래한 옷이 이것밖에 없어서요”라고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생님한테는 죄송한 게 맞는데, 우리가 잘못한 건 아니라고 했다.
그즈음에는 초밥이가 ‘언니들 옷’을 파는 가게를 알아오면 함께 가서 초밥이가 옷을 골랐다. 가끔 대구에 있는 부모님 집에 갔을 때 서문시장에 가기도 했다. 당시 초밥이에게 그곳은 신세계였을 거다. 옷 구경이라면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는 나였지만 초밥이한테는 못 당해서 의자를 찾아 앉아있다가 초밥이가 옷을 골랐다고 전화가 오면 가고는 했다. 때로는 초밥이가 온라인쇼핑몰 링크를 보내면 내가 결제하기도 했다. 옷은 아침마다 자기가 골라 입었고, 어떤 날은 겨울에 맨다리에 반바지를 입겠다고 해도 나는 그러라고 했다. 멀치감치 울타리를 쳐놓고 초밥이가 그 안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를 경험하기를 바랐다. 이런 양육방식은 나의 경험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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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시절, 토요일 오전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우르르 학교를 빠져나오면 그냥 집에 가기는 아쉬웠다. 친구들과 분식집에 가거나 학교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서문시장에 구경을 가고는 했는데 한 번은 친구집에서 놀다가 저녁 6시쯤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안방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뭐 하다 이제오노?”
“친구집에 놀다가 왔어요.”
“다음부터 토요일은 2시까지 온나.”
그때는 해도 지지 않아서 밝을 때였고 나는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이유를 물었다.
“학생들이 많을 때 버스를 타고 내려야지, 혼자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오면 암만 낮이라도 위험하다.”
나는 아버지 말이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아버지를 꺾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한동안은 함께 놀자고 하는 친구들에게 아버지 때문에 집에 가야 한다고 하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놀러 갈 생각에 들뜬 친구들을 뒤로하고 혼자 버스정류장으로 향할 때 마음은 쓸쓸했다.
하지만 얼마 후 친구들과 분식집에 가거나 시내 구경을 갔다. 일요일도 없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공장에 일하는 아버지가 나의 귀가시간을 체크하는 건 무리였기 때문에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마음 한편은 늘 조마조마했다. 집으로 향할 때면 아버지가 벼르고 있을 것만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문을 열고 현관에 아버지 신발이 없으면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버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안전한 길로 자식을 안내하고 그대로 살기를 바랐다. 소중한 자식이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라는 사람의 자잘한 요구와 의견은 묵살되기 일쑤였다. 몇 번은 의의를 제기해보기도 했지만, 해도 안된다는 걸 경험한 후에는 아예 체념하게 되었다.
욕구를 억압받으면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된다. 소모적인 방식으로 표출되는데 나에게는 술이라는 방식이었다. 스무 살에 술을 마셨을 때 느낀 해방감은 너무나 컸다. 처음 맛보는 자유로운 기분이었고, 그건 나로서는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스스로 내 인생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불편한 감정을 잊기 위해서는 더 마시고 더 취해야 했다. 술을 마시면 반드시 취해야 했고, 결국 필름이 끊기고 다음날 후회했다. 나의 이십 대는 그런 시간의 반복이었다.
초밥이가 친구와 서울에 놀러 가겠다고 하거나 친구집에서 자고 오겠다고 할 때마다 나의 솔직한 마음은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집 주소, 부모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고, 서울에 가는 경로와 계획을 자세히 적어서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한 뒤 허락했다. 그러고 나서 초밥이가 돌아올 때까지 가슴을 졸였다. 어쩌면 내가 걱정하고 싶지 않아서 초밥이가 친구집에 자는 걸 못하게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식이 부모의 눈을 피해서 어떤 일을 하면 죄의식을 가지게 된다. 죄의식은 불편한 감정이기 때문에 그걸 털어내기 위해 또 다른 행동을 불러온다. 충동적이거나 일탈에 대한 욕구는 이 불편한 감정을 벗어나려는 부질없는 시도인지 모른다. 나의 양육방식은 나의 소중한 사람이 내가 쳐논 울타리를 넘어갔을 때 알 수 없는 충동에 시달리며 인생을 소모하지 않기를 바라는,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