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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 Mar 02. 2020

열정 페이 인턴생활과 플랜틴(plantain)

뉴욕. 그 이름만으로 설레는 곳.

사법연수원 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시기는 뉴욕 주 UN 대한민국 대표부 인턴을 했던 가을이었다. 여름의 끝자락이었던 9월 마지막 주, 뉴욕 JKF공항에 도착에서 우버를 타고 맨해튼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오전 10시쯤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고 오후에 바로 근처 동네를 돌아보기로 했다. 아직 여름의 기운이 남아 푸르른 나무가 울창했던 리버사이드 공원도 가고. 나는 당시 조금이라도 빨리 적응하고 싶었다. 원래 적응력이 빠른 편을 아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두 번째 겪는 뉴욕이었지만, 당연하게도, 여전히 낯설었다. 아마도 사법연수원 기관 연수 차 단체로 갔던 것과 일하러 혼자 가는 뉴욕행은 다를 수밖에 없었기도 하고, 당시 연고가 없는 뉴욕에 몇 달간 인턴십을 하러 갔다는 점에서 뭔가 미지(?)의 생활 직전의 미묘한 긴장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게다가 숨 가쁘게 바삐 돌아가는.. 무한경쟁을 상징하는 세계 최대의 도시 뉴욕에서 거의 세 달 남짓한 생활. 처음엔 좀 긴장되고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내가 살았던 동네는 미드타운보다 더 위 컬럼비아 대학 근처였다. 북동쪽으로 조금 더 가면 할렘이었다. 보통 미드타운이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인턴 동생들은 미드타운이나 더 아래쪽 아니면 브루클린이나 뉴저지에 숙소를 둔 경우가 많았고 어퍼 웨스트 쪽에 머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특히 인턴십 코디네이터 선생님께서는 내 숙소 위치를 듣고는 기겁?을 하셨었다. 당장 이사를 하라고 하셨던 것도 같다.
 
사실 뉴저지가 가장 안전하고 깨끗할 수는 있었겠지만, (한인들이 많이 사는 이유겠지?) 뉴저지로 숙소를 잡으면 매번 기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불편할 것 같아서 뉴저지는 처음부터 제외했었다. 무엇보다 맨해튼에서의 삶을 체험해보고 싶었던 이유가 가장 컸다. 로컬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보고, 알고 싶었기 때문에.


당시 엄청나게 검색해서 숙소를 찾은 데다, 크게 위험하지 않을 것 같아 과감하게 결정했다. 위럽뉴욕 숙소의 MJ 언니는 동네가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했었고, 무엇보다 위치가 리버사이드 쪽이어서 강을 따라 조깅을 하기에 너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몇 달간 정말 단 한 번도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은근히 동네가 정겨워서 좋았다. 가끔 밤늦게 퇴근할 때는 지하철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에 마약 한 것 같은 사람들이 조금 보이긴 했었지만 별 일은 없었고, 근처에 있던 아파트 계단에 옹기종기 앉아있는 20대들의 모습을 보면 흡사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한 집에 식구가 많아서 답답하니 저렇게 나와 있다고 들었던 것 같다.
 
미드 Gossip Girl에 나오는 부자동네 어퍼 이스트는 아니지만, 어퍼 웨스트만의 매력이 있었다. 동양인도 꽤 살고, 동유럽이나 라틴계, 흑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가족단위가 많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많았다. 그들의 억양 가득한 영어를 듣는 재미도 있었다. 저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일까 이러면서.
 
무엇보다 과일 물가가 싸고, 음식이 맛있는 가게가 은근히 많아서 마음에 들었다. 해밀턴이라는 동네 슈퍼마켓의 과일은 저녁에 가면 특가도 있고, 종류는 아주 다양하지 않아도 싱싱하고 저렴한 과일이 많았다. 어차피 주로 먹었던 과일은 사과와 오렌지, 바나나, 그리고 아보카도 정도였으니까.
 
아보카도, 오렌지, 사과가 1불에 2개 정도, 할인행사를 할 때는 더 많이 주니까 정말 과일천국 아닌가. 퇴근을 일찍 한 날이나(사실 거의 그런 일은 없었지만), 주말에는 동네 과일가게에 가서 일주일 동안 먹을 과일을 사놓고는 했는데 과일값이 너무 싸다 보니 2불이면 과일 장보기는 충분했다. 시간을 내서 일부러 트레이더조에 가는 날 이외에는 주로 퇴근길에 과일 몇 개 살 때 해밀턴을 이용했다.
 
열정 페이라는 말처럼 당시 인턴 급여가 따로 없고, 식비나 교통비도 제공되지 않았기에 모든 비용은 전부 사비로 지출을 하다 보니 절약정신 발휘. 이런 것도 소소한 재미가 되었다.


당시 마침 스위스 제네바의 UN본부에서 일하는 인턴이 스위스의 살인적 물가를 감당할 여력이 안된다면서 UN본부 근처에 텐트를 치고 생활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열정 페이의 문제점을 다루는 내용이었다. 극 공감하며 뉴스를 보았던 기억. 뉴욕 물가도 만만치 않으니. 특히 렌트비는 OMG.
 
처음 동네 과일가게 해밀턴에 갔을 때였다. 우선 만만한(?) 바나나를 살까 둘러보았다. 바나나는 출근할 때 꼭 챙겨가야 하는 필수품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뭔가 그동안 살면서 보아왔던 바나나와는 사이즈가 너무 달랐다. 나는 그냥 미국의 음식 스케일을 경험한 것에 비추어, 좀 큰 바나나겠거니 생각했다.
 
몇 개를 사들고 집으로 와서 껍질을 까는데.. “잉?...” 껍질이 훨씬 더 두꺼운 편이라 손으로 껍질을 까기 어려웠다. 겨우 껍질을 까서 한 입, “앙” 베어 물자 느껴지는 뭔가 덜 익은 맛!!! 약간 텁텁하고 떫기도 했던 맛.
 
한두 입을 더 먹어보고는 뭔가 이상해서 그만두었다. 며칠 뒤에 MJ 언니에게 물어보니, 바나나가 아니라 ‘플랜틴(plantain)’이라는 과일이었다.

이렇게 생겨서 같이 있으면 구분이 되지만, 하나만 보면 착각하기 쉽다

그런데 플랜틴은 그냥 생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구워 먹거나 튀겨먹는 용도다. 남미 음식으로 유명한. 식용유를 살짝 두르고 프라이팬에 구워 먹으니 맛있는 플랜틴. 칩으로도 많이들 먹는데, 나초칩처럼 살사 소스나 과카몰리와 함께 먹으면 맛있다.
 
플랜틴을 생으로 먹으면 잘못하면 배탈이 날 수도 있다고 했는데, 다행히 아프진 않았다. 플랜틴과 바나나를 헷갈린 초보 뉴욕커의 에피소드가 생겼고, 이후 과일가게에 갈 때마다 바나나를 보든, 플랜틴을 보든 생각이 나는 추억이 되었다. :)

요렇게 요리해서 먹는 플랜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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