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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재 Jun 05. 2024

공항에서

이번 출장은 LA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San Diego까지 가는 여정이다. 티켓팅을 충분히 일찍 하지 못한 죄로 LA 공항에서 7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난처한 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공항을 서성이다 들어선 바에서 화이트 와인을 시켜 놓고 이메일도 하고 책도 읽고 하다 보니, 바텐더들의 눈총이 느껴진 건 내가 예민한 이유에서일까. 한 잔을 비우고 둘 째 잔을 시키니 얼굴은 붉어지고 기분은 알딸딸 해서 나답지 않게 누구랑도 친구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알코올로 기분이 업되기는 했지만 공항이라는 공간은 태생적으로 외로움의 공기로 채워져 있다. 떠나는 사람들의 공간. 자신의 기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생소한 미래가 기다리는, 공항에는 그런 불안의 공기가 있다. 불안은 오롯이 각자가 감당해야 하는 개인적인 느낌이다보니 곧 외로움과 정서가 닿아 있다. 공항의 분주함 속에서 외로움의 입자들이 공기 중에 부유한다.


그렇다고 이런 공항의 멜랑콜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자는 것은 아니다. 공항에 오기 이전의 세상은 익숙함이다. 공항에서 우리는 그 익숙함을 떠나 미지의 변수가 기다리는 세계로 가기 위해 기다림의 시간을 갖는다. 기다림의 시간은 곧 준비의 시간이다. 변수를 맞이할 준비. 어쩌면 공항은 불안과 외로움을 주입하며 우리로 하여금 미지의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공간이라 해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이국의 공항에 갖혀 알코올로 감정의 마취를 시도하며, 일상으로부터의 이탈이 주는 불안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낯선 내일을 숨죽여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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