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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우 Feb 04. 2023

명동교자

사진출처 : Unsplash의 Dương Hữu

“여기, 김치 좀 달라고 몇 번을 말해요!” 두 노인은 동시에 소리쳤다.


어제 내린 눈이 채 녹지도 않은 날, <명동교자>는 오후 두 시임에도 정신이 없다. 종업원은 머쓱한지 “김치 왔어요~.” 하며 접객에 나선다. 이제는 검은 머리를 찾아볼 수 없는 두 노인은 서로의 그릇에 김치를 덜어주며 고기 국수의 느끼함을 해소하고 있었다. 종업원을 재촉하는 그들의 행동이 썩 너그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명동교자>는 매장 정책인지 알 수는 없지만 혼자 방문하는 손님들을 구석자리로 몰아 놓는다. 때문에 이곳은 홀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할 수 있는 식당이기도 하다. 혼자 국수를 떠먹던 나는 옆자리 어르신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여기 면 좀 더 주세요.” 몇 번이고 작은 소리로 종업원을 부르는 그녀. 입장과 동시에 목격한 두 노인과 대비되는 모습에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그녀는 식사를 할 때 배추김치를 씹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녀의 젓가락질은, 언젠가 내 젓가락질이 서툴다며 잔소리했던 승무원 출신 교회 집사님의 "표준 젓가락질"을 보는 듯했다. 뜨거운 국물을 먹으면서도 좀체 벗어 놓지 않는 그녀의 재킷에는 명품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너무 속물적이긴 하지만 그녀를 관찰하고 "좀 사는" 어르신으로 결론내고 나니 그녀의 흰머리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편집장, 메릴 스트립의 카리스마 넘치는 "백발"을 떠오르게 했다.


언젠가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했던 대화가 있다. 지갑이 뚱뚱해져야 비로소 여유가 생기는 법이라고. 어딘가 너그러운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탄탄하기에 그 분위기가 풍기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도 부자가 되자며 침을 튀기며 나눴던 그 대화. 백발의 좀 사는 어르신은 내 짧은 관찰과 어설픈 가설을 지지라도 해주려는 걸까, 추가 주문한 면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녀는 늦으면 늦는 대로 종업원의 접객을 감사할 줄 아는 어른이었다. 두 노인과 그녀의 접객에 대한 태도를 비교하면서 나는 남몰래 두 노인의 조급함을 얕잡아 보고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기 전까지.


“여긴 면 더 달라면 더 줘요, 부족하면 주문해요.”


놀랐다. 무릇 좀 사는 어르신들의 목소리에서는 편안하면서도 충만한 기운이 느껴질 것이라고 상상해 왔는데,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저 외로움만 묻어 있었다. 마침 식당의 반대편에서 두 노인의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여긴 다 좋은데 너무 사람이 많아." 빠릿빠릿한 접객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 섞인 소리였다. 기대와 다른 목소리에 놀란 마음과 그들의 거슬리는 소리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싶어졌다. 고개를 들어 두 노인을 쳐다보았다. 노부부의 표정에는 의외로 온화함과 든든함이 그려져 있었다. 그들의 표정이 그렇게나 아름다웠던 것은 식탁에 칼국수 두 그릇과 고기만두 그리고 추가 김치가 올라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같은 말을 외쳐줄 사람이 옆에 있다는 충만함이 그들과 제법 떨어진 거리에 자리 잡은 나에게까지 전달되었다.


백발의 그녀도 분명 노부부의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가 아닐까, 그녀의 목소리에 외로움이 짙게 묻어 나온 것은. 재킷에 매달려 있는 명품도, 지난 삶을 엿볼 수 있는 고풍스러운 식습관도 어쩌면 더 이상 그녀에게 든든함을 보장해 주는 것들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내게 건넨 말은 면 추가가 무료라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 어르신은 옆자리에서 당신과 같은 목소리를 내주는 사람을 원했을 것이다, 저기 저 노부부가 부럽기도 했을 것이고. 그녀의 말은 그 자체로 외로움과 그리움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저도 알아요."


그녀에게 돌려준 대답이 후회된다. 조금 더 따뜻했더라면. 같이 면 추가 주문을 했더라면 그녀의 헛헛함을 잠시나마 채워 줄 수 있지는 않았을까. 퉁명스러운 내 말이 그녀의 외로움을 더 짙게 만든 건 아니었으면. 식사를 마치고 떠나는 그녀의 등을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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