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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선 May 11. 2023

‘달리기를 말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분석

작가를 위한 분석 노트

책을 읽기 까지

불현듯 '소설가의 에세이는 어떨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소설과 에세이를 다작한 현존하는 유명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의 에세이는 소설과 다르게 생소한 책이 많았다. 몇 권의 에세이 중에서 그래도 한국에서 평점이 괜찮은 <내가 달리기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로 정했다.




글의 구성

잘 짜인 구성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인 기록이나 경험을 에세이로 풀어내는 방법에 대해 엿보았던 것 같다. 일기 같은 내 이야기를 에세이로 만들기 위해서는 '소설 같은 구성'이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맥락 없이 중언부언하는 말은 듣기 힘들다. 특정한 경험이나 사건을 순차적으로 풀어나가며, 자신의 생각이나 메시지를 중간중간 던지는 것이 좋다. 저명한 소설가답게 무라카미의 에세이 속 이야기는 잘 짜인 구성을 갖고 있으며, 독자에게 한 편의 영상을 보여주듯 생동감 있게 글을 전개시킨다.



글의 구조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

이야기를 만드는 기본 구조는 기승전결이다. 일기를 에세이로 쓰고 싶을 때도 기승전결 흐름이 필요하다. 어디를 읽어도 똑같은 감상과 여운을 느낀다면 글이 맹맹해진다. 이 책에서는 달리기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출발하여, 마라톤 도전 경험을 지나, 더 좋은 기록이 나오지 않아 낙심하는 상황 속 작가의 변화와 지속에 말하며 이야기를 끝낸다. 즉, 이야기에 굴곡이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에세이를 쓰고 싶을 때는 기승전결 구조를 활용하여 독자가 흥미진진하게 느끼도록 해야 한다.



글의 요소

주제와 연결된 다양한 소스

이 책의 주제는 '마라톤' 즉 달리기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을 소설가 외에도 '러너'라고 소개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달리기에 대한 사랑이 깊고, 매일 달리고 있었다. 이 책의 제목에서처럼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그 소스가 한 부분 고립되어 있지 않다. 마라톤의 장비, 신발, 연습, 동료, 경기, 대회 등 달리기로 풀어낼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을 알맞게 녹여냈다.



문장 능력

사색을 더하는 문장의 깊이

무엇보다도 글의 중간중간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사색이 묻어난 문장이 좋았다. 역시!라는 표현이 나오는 문장들. 너무 화려하지 않으면서, 너무 밋밋하지 않은, 적당한 담백함 속에 있는 정제된 날카로움이 이 책을 읽는 자가 발견하는 묘미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일기식의 에세이는 자칫하면 '어쩌라고?'의 느낌을 만들 수 있다. 작가의 경험이 나와 상관있게 만들려면, 사실을 전달하는 기록을 넘어서, 그 과정 속 작가가 느낀 사색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메시지

주제와 연결한 삶의 철학

이 책은 달리기가 주제지만, 결국은 작가의 정체성을 가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쓰는 인생'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비율로 따지만 8:2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 2할에 담긴 진득한 메시지가 매력이 있다. 8할이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달리는 인생을 통해 '작가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작가가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 알 수 있는 철학이 묻어날 때 책에 알맹이가 생긴다.


“나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칙적으로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서 달리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공백 속에서도 그 순간순간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온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진정한 공백 같은 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은 진공을 포용할 만큼 강하지 않고, 또 한결같지도 않다.”



기대 심리

작가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하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글을 읽고 싶다. 그의 삶의 한 단면을 엿보고 싶다.> 나는 그 필요를 충족받았다. 일기 형식 에세이를 독자가 읽는 대표적인 이유는 '작가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니 어떤 주제를 풀어내든, 현상과 사건으로만 집중하고 끝내지 않는 게 좋다. 방법론적인 정보는 다른 실용 책 들이나 관련 자료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다. 에세이에서는 작가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나'에 대한 소개로 이야기를 접근해야 된다.


“이 힘을 유효하게 쓰면 재능의 부족이나 쏠림 현상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나는 평소 하루에 3시간이나 4시간 아침나절에 집중해서 일을 한다. 책상에 앉아서 내가 쓰고 있는 일에만 의식을 집중한다. 다른 일은 아무것도 생각하지도, 보지도 않는다.” 



충족 심리

작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어떤 작가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작가가 쓴 글의 내공과 경험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 결과 그 속에서 얻은 작가의 지혜와 내공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무라카미에 대해 궁금하다'라는 마음의 뒤편에는 '그래도 뭔가 배울만한 점이 있겠지'라는 심리가 깔려 있었다. 그는 유명한 작가이니 말이다. 에세이를 읽을 때 독자는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지켜본다. 독자는 질문 없는 물음표를 던져서, 마음에 드는 느낌표를 받는다면 그 에세이에 긍정적인 감상평을 가진다.


”재능 다음으로 소설가에게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가 질문받는 다면 주저 없이 집중력을 꼽는다. 자신이 지닌 한정된 양의 재능을 필요한 한 곳에 집약해서 쏟아 붓는 능력. 그것이 없으면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달성할 수 없다.”




감상평


사실, 이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에세이가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마라톤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이다. 그러니 누군가 달리기를 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서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내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더욱이 내가 성장하고 싶은 작가라는 분야의 거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결국 이 책은 달리기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무라카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읽게 되었다. 그 결과 알지 못했던 마라톤의 매력과 무라카미가 하루를 얼마나 규칙적이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지 배우게 됐다. 그가 지키는 일과 삶의 리듬과 균형이 작가로서(혹은 모두에게) 중요한 에너지가 자원이 된다는 사실이 교훈으로 남겨졌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같은 에세이를 쓰고 싶은 사람을 위한 가이드


1. 자신의 경험 속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특정 대목에 주제를 잡는다.

2. 그 주제와 연관된 다양한 에피소드를 정리한다.

3. 한 편의 드라마(영화)의 시놉시스를 만들 듯 기승전결 있는 구조를 짠다.

4. 독자가 이야기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소설 같은 글쓰기를 한다.

5. 경험과 사건만 풀어내지 않고, 그 속에서 작가가 느낀 생각이과 교훈을 담는다.



조심해야 할 부분

일기 형식의 에세이가 반응을 얻으려면, 글이 재밌어야 한다. 안 그래도 독자가 필요한 메시지를 얻기 부족한 형식의 에세이인데, 글이 재미없다면 독자는 독서를 멈춰버릴 것이다. 또한 소설처럼 내 이야기를 전개시키다가도 적절한 곳에 작가의 사유가 녹아들어야 한다. 그 비중과 흐름을 잘 조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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