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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선 Mar 27. 2023

이별은 로맨스의 끝이지 사랑의 종지부는 아니다

30대에 다시 열린 라라랜드

사랑은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사람의 접점을 만들어 낸 경이로운 마법의 순간이다. 밤에만 떠오르는 달이 낮에 모습을 드러내는 때가 있다. 달이 태양과 만나 하나의 구를 이루는 찰나의 시간, 세상은 어둠으로 뒤덮인다. 이렇듯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서로의 빛을 완전히 흡수한다. 주변은 암흑이 되고, 무대의 주인공으로 변한 이들을 비추는 둘 만의 조명 아래 황홀하게 춤을 춘다. 일식이 끝나면 닫혔던 시야가 개방된다. 중첩의 시간 후 해와 달은 다시 자연의 궤도에 오른다. 그리고 자신의 빛이 비춰야 할 곳을 위한 삶을 되찾아간다.   




라라랜드를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 간다'와 '사랑한다면 헤어지지 말아야지'로 감상평이 나뉘었다. 나는 후자였다. '둘이 진짜 사랑한다면 헤어지지 않는 쪽을 택했겠지'라고 생각했다.


조금 성숙해졌을지 모를 30대가 되었다. 또다시 이별을 흘려보내야 하는 시간을 맞이했다. 떠나보냄의 의미를 곱씹다가 동화 같은 사랑의 결말을 좋아했던 과거가 생각났다. 소싯적 사랑의 결론을 한 단면으로 너무 성급하게 읊조렸었나 보다. 참으로 배려심 넘치는 현실은 이해되지 않던 감정의 한 축을 기어코 배우게 만들었다.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말이다.


라라랜드를 다시 보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두 주인공의 삶과 감정이 그대로 흡수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영화의 결말을 이제야 환영할 수 있었다. 묵직하게 전달되는 대사들이 마음을 울린다. 이별의 문턱에서 바라본 꿈의 나라(lala land)를 통해 환상 속 현실이 비춰졌다.




다른 장르와 혼합되지 않은 정통 재즈를 사랑한 ‘세바스찬’은 그의 음악에 확고한 철학이 있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지키려는 고집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신념을 내려놓게 된 이유는 사랑하는 여인 ‘미아’와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였다. 그는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그토록 싫어하던 퓨전 재즈 밴드에 들어가게 된다(미아의 권유에 따라).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을 위해 택한 현실의 길에서 낭만은 자취를 감춰갔다.


미아는 꿈을 지키지 않는 세바스찬에게 점점 실망하게 된다. 동시에 자신의 궤도와 멀어지는 연인을 바라보며 혼란을 느낀다. 아슬아슬하게 치닫던 감정선은 갈등에 불을 점화시켰다. 세바스천의 밴드가 성공하게 되고 장기적인 투어 공연 일정을 알게 되자 미아는 그에게 본래의 꿈을 잊었는지 묻는다.


- 그동안 번 돈을 가지고 클럽을 하라는 거지.

- 아무도 오지 않는데?

- 재즈에 열정이 크니까, 사람들이 올 거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거든.

  자기가 잊은 걸 상기시키는 거야.

- 내 경험으론 아니야. 어찌 됐든 이제 나도 철들어야지

- 오랫동안 간직한 꿈이었잖아.

- 지금 이게 내 꿈이야. 드디어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잖아.


어쩌면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연인 간의 싸움. 하지만 이 장면을 통해 보였던 것은 결핍에서 비롯된 연인에게 투영되어 온 자신의 꿈이었다. 세바스찬을 위 미아의 말은 사실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반응이 없더라도 일단 스스로 도전해 보는 용기, 열정이 큰 만큼 언젠간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라는 희망, 오랫동안 간직했던 포지 않던 꿈. 미아와 세바스찬은 같은 방향을 보며 길을 나섰다. 그들은 연인이자 가장 가까운 동료였다. 그녀는 배우로, 그는 클래식 재즈 클럽으로,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한 배에 올랐었다. 그런데 함께 항해하던 동료가 그들만의 배에 벗어나 버렸다. 그의 선택은 두 사람이 더 크고 안전한 배에 오르기 위해 잠시 떠나는 모험이라고 여겼지만, 남겨진 동료는 그렇지 못했다. 신의를 저버린 배신감과 꿈의 길에 홀로 남겨진 상실감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둘을 중첩되게 한 황홀한 일식의 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갈등이 언젠가 초래될 수밖에 없었음을 영화는 처음부터 제시해온 것을 발견했다. 세바스찬은 그녀의 꿈을 한 순간도 격하시키거나 응원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언제나 성공할 것이라고 그녀를 격려했다. 반면 미아는 현실의 걱정과 대중의 시선에 묻혀 있었다. 지쳐있던 그녀의 이 세바스찬과의 대화 곳곳에서 엿보인다. 전통 재즈 클럽에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하고, 재즈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세바스찬을 통해 재즈를 좋아하게 되고, 클럽의 이름을 지어주고, 그가 간직했던 꿈을 저버리지 않길 원했다. 마치 안타까운 자신의 현실을 동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바스찬의 올곧은 격려는 자신의 신념을 지켜온 순수한 고집에서 비롯되었다. 미아의 투정 섞인 응원은 절망적인 현실에서 포기하지 않기 위한 일말의 용기였다. 그 둘은 서로의 꿈을 보며 자기 자신을 투영했다. 서로 나눠가진 사랑이란 책임감안에서 함께 성장되길 원했다. 그러나 미처 알지 못한 사실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동일시하던 환상은 결국 그들을 어긋나 버리게 만드는 현실을 초래한다는 것을 말이다.






- 우린 어디쯤 있는 거지?

- 모르겠어.

- 어떻게 해야 돼?

- 할 수 있는 게 없어 자기가 캐스팅되면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해. 전략을 다해야지. 자기 꿈이 자나.


-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 보자.

- 언제나 자길 사랑할 거야.

- 나도 항상 사랑할 거야.




라라랜드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그들의 관계를 묻는 미아의 질문에 세바스찬은 ‘흘러가는 대로 가 보자’라고 답한다. 만약 이별을 초래하게 될 갈등이 언제 오는지 미리 알았다면 둘은 다른 결정을 했을까? 영화의 마지막에 서로 결혼까지 이어지는 상상의 과정이 등장한다. 그 속에서 그들은 과거와 다른 순간의 결정으로, 또 다른 인생을 나누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다. 인생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꿈도, 사랑도, 무엇 하나 확언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에게 찾아오는 선택의 순간에 오직 최선을 다하며 주어진 길을 묵묵히 나아가는 것뿐이다. 흘러가는 현재와 택의 결과에 순응하며 꿈꾸 삶을 염원한다.


미아는 알 수 없는 현실의 길모퉁이에서 ‘언제나 사랑할 거야.’라고 말다. 그리고 세바스찬도 똑같이 사랑을 화답다. 그 고백에서 일말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는다. 앞 일을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영원을 약속다. 그 순간 그들의 사랑은 현실을 뛰어 넘는다. 이별이란 육체의 소멸되는 시간을 곁에서 지켜주지 못하겠지만, 그들함께 꿈꿨던 미래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와 그녀가 약속한 사랑은 서로의 꿈을 응원한 사랑이다. 자신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 속 서로에게 바치는 축복의 메시지다. 언제나 응원하고 있는 누군가 있노라고, 그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에 충실하자고 말이다. 나는 이 대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뭉클해진다. 이별은 로맨스의 끝이지, 사랑의 종지부는 아니다. 사랑은 격려와 축복의 약속, 그리고 서로를 구원했던 찰나 희망을 기억하며 언제나 그 속에서 함께할 수 있는 것이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시간이 지난 후 원하던 꿈을 이룬다. 성공한 배우와 정통 재즈 클럽이 그들의 삶에 달성되었다. 비록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결합되지는 못했지만, 서로가 응원했던 각자의 꿈이 지켜진 약속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꿈을 이룰수 있도록 성장하게 해 준 연인, 그 과거의 시간은 현재 이어다. 즉, 그들 함께 나눴던 미래가 끝나지 않고 여전히 확장되고 있었다. 바로 사랑이라는 시간 속에서 말이다. 서로에게 자신을 투영했던 연인은 그제야 분리된 현실에서 함께하게 된다. 앞으로도 그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찬사를 띄우며, 마지막에 맞닿은 두 연인의 시선은 여전히 과거의 고백이 유효함을 전한다.


“언제나 자길 사랑할 거야.”

“나도 항상 사랑할 거야.”


그렇게 그들은 서로가 원하던 꿈의 나라인 ‘라라랜드’에서 해피엔딩을 맞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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