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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san민산 Dec 05. 2023

우리는 지금 어른이 되어가는 중

집 밖에 나가서는 좀처럼 연락하지 않는 아이에게 문자가 왔다.

"엄마, 언제 집에 오세요?"

"무슨 일? 지금 가고 있는 중인데."

"까만 슬랙스 수선 좀 해주세요. 저녁에 장례식장 가야 해요."


동네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서둘러 집에 들어와서 밑단이 뜯어진 바지를 꿰매고 다림질을 마칠 무렵 아이가 돌아왔다.

검은색 폴라에 손질해 놓은 검은 바지를 입고 검은 재킷까지 꺼내서 갖춰 입으며 친구 이야기를 해준다.


고등학교 때 같이 어울려 놀던 친구야. 많이 편찮으셨나 봐. 얼마 전 AB형 혈액을 구한다고 해서 내가 해줄 수 있다고 했는데 그 후로 연락이 없었어. 친구들이랑 만나서 같이 다녀올 거야.


아이에게 부의금 봉투 쓰는 법을 알려주고 향 피우고 절하는 방법, 상주와 인사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외투를 입고 나가는 아이 뒤를 따라가며 먼지를 털어주면서 친구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잘 위로해 주라고 당부했다.


아이가 받은 부고는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처음으로 맞닥뜨린 죽음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친구를 잃었다. 초등학교 시절 같이 뛰어놀던 친구였고 크면서는 멀어졌지만 기억 속에 있는 인물과 영영 헤어진다는 것을 처음 경험하게 되었다. 

아이는 매일 빈소를 찾았다. 내 아이뿐만 아니라 이 동네에 사는 친구들은 매일 빈소를 찾으며 준비되지 않은 헤어짐, 슬픈 헤어짐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써달라는 가정통신문이 올 정도로.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서울에서도 보기 드물게 시골 마을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이곳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결혼한 후에도 이곳에서 사는 경우가 더러 있을 정도로 오래된 이웃이 많다. 우리 집도 이곳에서 20년을 살았고 아이는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대학생이 되었다.

기저귀를 하고 우유병을 물면서 성당 유아방에서 지낸 아기들이 커서 복사가 되었고 올해 대학 신입생이 되면서 주일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동네에서 나이가 같은 아이들은 적어도 한번 이상 같은 반 친구였고 그냥 모두가 다 동네 친구들인 것이다.


오늘도 동네 친구들은 모여서 친구 어머니의 빈소를 찾았다.

인사하는 예절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으며 집을 나서는 아이를 배웅하면서 우리 막내가 지금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 싶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순서와 절차에 익숙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복잡한 감정들에도 우선순위가 있고 행동에도 절차가 있듯이 무엇을 앞에 두고 무엇을 뒤에 둘지 경험으로 터득해 가는 것.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스무 살 우리 집 막내는 지금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고 예순 살 우리 집 안주인은 아직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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