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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san민산 Oct 21. 2023

드디어 찾았다! 나의 MBTI

그 별나다는 INFJ

사실 나는 오랫동안 자책하며 힘들었다.

왜 나는 사람들이 싫지 않은데 어울리는 게 힘들고 저녁시간 번개하자며 나오라고 하면 어떻게든 나가기가 싫고 분명 내가 한 약속인데 약속시간이 다가올수록 약속이 취소되기를 바라기 일쑤였다. 모두가 웃는 포인트에 나는 웃기지 않았고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카톡 문자에서도 나는 행간의 뉘앙스를 읽고 있으니 참으로 복잡했다. 


회사에서도 직원들을 챙기고 힘든 일에 마음 써주면서 업무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했지만 내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정말 전구가 팍 하고 나가는 것처럼 모든 사고가 멈추었다.

그리고 내 앞에 벌어진 이해 못 할 상황들을 정리하고 내가 이해할 때까지 어두운 생각들과 씨름해야 했다.  마치 내 머릿속에 생각의 서랍장이 있어서 기억과 상황의 조각들을 차곡차곡 분류해 정리해야 나는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니 그 시간들은 긴 터널이었고 그곳을 통과해 나오기까지 꽤 긴 시간을 혼자 무수히 애써야 했다. 혼자서 씨름하는 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나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았고 내 깊은 우울은 치료의 대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기도 했었다.


아주 오래전 30대쯤 광고회사에서 날며 뛰며 일하고 있을 때 우연히 단체로 강사를 초청해서 MBTI 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하루 교육 일정으로 검사하고 같은 유형으로 팀을 짜서 과제를 수행하여 성격유형별 차이를 이해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때 나는 매우 명확한 INTJ였다. 냉철한 이성과 분석 빈틈없는 계획 그 자체였다. 그저 서로의 결과를 보며 즐겁게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앱을 통해서 간편하게 검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호기심 삼아 테스트를 해본 적이 있었다. 너무 간편하다 보니 검사는 몇 분 걸리지도 않았고 그렇게 받게 된 결과는 INFP, INTP.. 다양했다. 


이 이야기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

이것은 검사결과의 상세 설명에 내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기도 했다. 이건 맞는 거 같은데 이건 너무 아니고 그렇다고 치중비율이 경계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MBTI 결과는 적어도 내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 그냥 간단한 설문조사를 성의 없이 체크하는 것처럼 검사과정이 너무 수월하다 보니 검사에 임하는 나 역시 너무 성의가 없던 듯싶었다.


어쩌면 내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는 확인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성의 있게 문제를 차분히 읽어가며 제대로 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집에 혼자 있던 어느 날 경건하게 앱을 켜고 한 문항 한 문항 진지하게 읽어가며 체크하고 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결과는 INFJ, 내향형 83%, 직관형 82%, 감정형 67%, 계획형 74%, 민감형 68%.

상세 설명에 드디어 내가 동의하게 된 거다.

설명 중에는 전체 인구 중 약 2% 정도의 드문 유형이라고 하는데 내가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무려 2% 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구나 싶은 게 내가 위로를 받고 있었다. 어찌 보면 내가 나를 이리도 모르고 있었나 측은하기도 하련만 나 혼자 씨름해 온 복잡한 생각들과 깊은 우울의 원인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2%라는 무리 안에 포함된다는, 적다면 적지만 보편적 기준 안에 내가 포함된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무엇이든 장점과 단점은 종이의 앞뒷면 같아서 경우에 따라 어떨 때는 장점이 되고 어떨 때는 단점이 되는 것이라  INFJ 역시 나의 단점은 뒤집어서 나만의 장점이 되는 것이었다.

 

"내면에 깊이 집중하며 인생의 목표를 찾으려는 강한 욕구로 인해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할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은 아니며(나에게도 찐친이 있으니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이익보다 남을 돕는 일에 집중하며(그렇지!) 창의력과 상상력과 세심함(나의 장점이기도 하지!) 등 자신의 강점을 다른 사람을 돕는데 활용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낄 때가 많다.(내 실속은 하나도 없지만 이럴 때 큰 기쁨을 얻곤 하지.)


이들은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부당함을 해소하려는 열망이 있으며(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 정치와 사회에 대한 교육을 시작했지.) 가끔 자신을 돌보는 대신 이상에만 집중하느라 스트레스나 번아웃으로 고생할 때도 있다.(맞아, 그랬다구!)"


나를 겉으로만 알고 지내는 이들은 나에게  " 참 밝다!"라고 한다.

나를 조금 알고 지내는 이들은 "피곤하게 살지 마!" 하고

나를 오래도록 알아온 이들은 "참 애쓴다."며 토닥토닥 위로를 건넨다.


밀려오는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동굴 속으로 깊이 들어가 있어도 이제 내가 나를 설명할 근거가 있으니 가벼이 돌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나를 증명하는 것조차 근거와 인정이 필요한 것을 보니 피곤하게 애쓰며 사는 게 맞지만 그 뒷장에는 나만의 장점들이 있으니 그 매력에만 집중하며 살고자 한다.


60이면 그래도 될 것 같다.

이렇게 나는 설명문 한 장으로 위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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