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문학, 엘리자베스 아체베도의 <시인 X>을 읽고서
<시인X>는 도미니카계 미국인 작가인 엘리자베스 아체베도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시의 형식을 빌려 쓴 독특한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이력에 관심이 갔던 부분은 바로 다수의 ‘포에트리 슬램’우승 경력이다. 이게 뭐지?
포에트리 슬램(Poetry Slam)은 자신이 쓴 자유시를 역동적으로 읽어 내려가는 낭독 대회, 또는 퍼포먼스를 의미하며 줄여서 슬램이라고도 한다. 즉흥으로 문장을 짓고 읊는 것도 가능하며, 랩의 라임처럼 운율이 극대화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 유사성으로 인해 힙합 문화와 적극적인 교류가 이루어진다.
나는 이 장르를 잘 모른다. 스웩이 담긴 마이크 문학이라고 해야 할까? 힙합과 통하는 것이 있다니, 프리스타일 랩과 시 낭독, 그 사이 어디쯤일 테지?
힘든 시련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개썅마이웨이를 걸어가는 책 속의 주인공을 보면서 묘하게 영화 ‘8마일’에 주인공인 에미넴(힙합 래퍼, 레전드 of 레전드)와 오버랩 되는 것은 할렘이라는 배경 말고도 닮은 것들 투성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할렘에 사는 십 대 흑인 소녀, 시오마라가 8월 24일부터 이듬해 2월까지 시로 쓴 일기로 되어있다.
시오마라는 이성에 대한 관심으로 인한 혼란과 흑인이라서, 여자라서 겪는 성별과 외모에 대한 편견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엄마로부터 겪는 억압등 이런저런 고민과 의문을 글로 토해내면서 나름의 답을 찾아가며 성장해간다.
엄마라는 큰 세상을 두려워하면서도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 스웩 넘치는 그녀가 사랑을 하고, 꿈을 만나며 시인으로 도전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함께 안타까워도 하고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기도 하였다. 사춘기 소녀의 사랑앓이는 너무나 설렘뽀짝깜찍하여 입꼬리가 안 올라갈 수 없는 법.
기독교 집안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란 나는 시오마라를 통해 그때 그 시절을 마주 할 수 있었다.
'나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구나. 아 나는 바람인가 별인가.'
깊은 고뇌에 잠겨 병이 났던 중학교 2학년때를 회상하면서
겁많고 찌질했던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거침없고 발칙한 매력의 그녀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운문형 소설이라는 생소함에 겁먹을 필요는 전혀 없다.
시인의 그 흔한 상징과 의미를 두른 어휘들이 어지럽게 춤추는 것도 아니고,
하오 하리 리라 같은 고리타분한 문체의 읊조림도 없다.
그냥 십 대 소녀가 단짝에게도 하기 힘든 속마음을 감성 짙은 문장으로 쓴 일기라 생각하면 쉽겠다.
그러나 이 일기들이 엉겨 붙어서 손 뗄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역시 작가의 마술!
일상에서 사용하는 평상어와 눈에 그려지는 서술형 문체로 아주 친절하게 흘러들어오니 독자는 그냥 마시고 취하면 되시겠다.
깊고 솔직한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야 너두 할 수 있어’ 하는 울림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황유원 역자의 말>
시오마라의 이름은 ‘X’로 시작한다. X는 곧 부정의 상징이다. 틀린 것에 ‘그건 틀렸다’며 과감히 X표를 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시인X’가 지닌 무한한 힘과 매력이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이 '자신에 대한 억측들을 어깨로 밀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데 익숙한 사람'이 되는 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역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겠다.
당연히 청소년들이 읽으면 너무나 좋을 책이지만 이렇게 연애 세포, 동기부여, 도전자극! 뿜뿜종합세트인 책은 저처럼 쩌른 쩨 짤 어른이 읽어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겠죠? 역자님에 바램에 따라 우리 모두 앞으로 나가며 어깨빵을 시전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