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FT explorer 허마일 May 05. 2020

어쩌다가, 얼떨결에 를 믿습니다.

시작하고 싶은 혹은 여전히 시작 중인 청춘들을 위해



 누군가 당신의 시작은 어땠나요? 하고 묻는다면 역시나 8년 간의 엔지니어 생활을 청산하고 시니어 강사로서 첫걸음마를 떼던 순간을 말해야겠다. -내밀 만한 명함이 이것밖에 없기도 하고요.- 자원봉사로 시작했던 경로당 레크리에이션, 땀에 흠뻑 젖었던 첫 유료 강의, 화질 구린 사진을 댕강댕강 오려 붙여 만든 홍보물 등… 나열해보니 제법 기특해 보이기도 하지만, 나의 시작은 발을 헛디뎌 계단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몸개그 같은 것이었다. 사명감이나 봉사정신이 완전 바닥은 아니었겠으나 지금의 일은 어쩌다가, 얼떨결에 하게 되었다고 말해야 속이 편하다.

 시작을 물어보는 질문에 다시 대답해보자면 강사 3년 차를 맞이하는 지금도 여전히 몸개그 중이며 여전히 시작 중이라는 난감한 말을 해야겠다. 프리랜서라는 일이 대부분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니어 강사라는 일은 범위가 넓고 경계가 모호한 영역이어서 얼마 간은 안정권에 안착한 듯 보이다가도 금세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뭔가를 구상하고 몸으로 부딪혀야 하니 매번 시작의 연속인 것이다. 뭐든 자꾸 마주하면 익숙해진다지만, 이 반복되는 우당탕 거림에선 좀처럼 멀미 감이 사라지질 않는다.

 ‘준비-시작!’,’ 레디-액션!’,’요이-땅!’처럼 모든 시작에 앞서 준비가 있기 마련인데 나는 어쩌다가 시작으로 지글 보글 끓는 지금이 된 걸까? 그땐 몰랐지만 어쩌면 뭉근한 가열의 시작이었을지 모를 과거의 일이 있다.


 퇴사하기 4년 전, 제주도로 일주일 간 홀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당시 강팍한 회사 생활에 갈증이 심했는지 즉흥과 자유에 집착적이었다. 즉흥여행답게 코스는 물론 숙소와 렌터카도 사전 예약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제주도행 탑승권도 당일에 구한 바람에 수시간 공항에 머무르다가 날이 어두워져서야 비행기를 탔으니, 설렘 가득했던 <원위크 제주 트립> 그 대망의 첫날은 즉흥적으로다가 자유롭게 김포공항을 관광했다.

 11월의 제주도는 아름다웠다. 하루는 이쁜 길을 따라가다 발견한 미로공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미로는 족히 2미터가 넘어 보이는 수풀 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짙은 녹음에서 번지는 풀내음, 어디선가 흐르는 잔잔한 클래식 때문인지 탈출해야 되는 미로보다는 느긋한 산책코스로 다가왔다.

제주 김녕 미로공원 

 자연에 흠뻑 취한 것도 잠시, 눈 앞을 가로막는 수풀 벽이 5분도 안돼 따분해졌다. 입장할 때 받은 지도를 펼치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젊은 친구, 부탁 좀 할게요. 지금 여기 들어온 지 한 시간이 넘었는데… 아직도 뱅뱅 돌고 있어요. 우리 좀 데리고 나가줘요.”

 스무 명 안팎의 남녀 어르신들이었다. 70대 중후반 즈음되었을까 등산복을 맞춰 입은걸 보아하니 동호회나 부부모임으로 온 듯했다. 

 “저만 따라오세요.

 갑작스러운 책임감에 일단 걸음을 옮겨봤지만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지도를 살펴야 했다. 금세 식은땀이 났다.

 “하하.. 여기가 아니었네요. 괜찮아요! 여기로 가면 나올 거예요.”

 “아 여기 아까 왔던 곳이네요. 잠시만… 그럼 여기로 가볼까요?”

 “아니 이렇게 연결시켜 놓다니… 하하. 미로 참 기가 막히게 잘 만들었네요.”

 “음 여기도 아니라면, 여기 이 길은 안 가봤으니 여기로 가봐요!”

 “힘드시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혼자 빨리 뛰어갔다 올게요.”

 조금은 젊다는 나의 방향감각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결국 우리는 갈림길이 뻗는 위치들을 거점으로 모든 길을 다 쑤셨다. 한 줄로 따라오는 이들의 발걸음이 쌓여갔지만 나를 찰떡같이 믿고 있는 모양인지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 미로가 끝나는 지점에 탈출 성공을 알리는 작은 종이 있었는데 10살 정도의 꼬마들이 시작점에서 탈출 지점까지 제 방 드나들 듯이 뛰어다니며 종을 울려댔다. 아이들의 키득거림과 쨍쨍한 종소리가 들릴 때마다 조급해졌다.

 암만 미로라고 해도 결국 가족, 친구, 연인이 함께 즐기는 공원이었다. - 나는 그렇지 못했지만 - 우리는 30여분 만에 탈출 지점에 도착했다. 크게 환호하는 어르신들 만큼 내게도 성취감이 밀려왔다. 성공을 알리는 종 앞에서 기념사진까지 찍어드린 후엔 바나나 우유, 팩 소주, 초코파이 그리고 용돈까지 받았으니 보람이 충만하다 못해 넘쳐흘렀다. 어르신들이 떠난 후엔 종을 사면으로 둘러싸고 있는 나무 난간 한쪽에 기대어 바나나 우유를 먹었는데, 탈출 지점이 전망대의 역할까지 하는 덕에 미로를 한눈에 보였다. 그제야 종소리가 멀리 들린다고 해서 잘못된 길이라는 법이 없고 가까이서 들린다 해도 무조건 옳은 길이 아니었음을 알아차렸다. 우유가 달았다. 



 퇴사 후 먹고살기 위해 어르신들을 상대로 레크리에이션과 율동을 하고 트로트 수업을 했다. 소통 강연, CS 강의, 송년회 진행, 관광 가이드 등 딱히 뚜렷한 정체성 없는 강사로 지내왔다. 코로나 덕분에 백수가 돼버린 지금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미로를 헤매던 그때와 닮았다. 시작의 앞선 준비, 뭉근한 가열점이 아닐까 싶었던 일이 현재와도 맞닿아있어 보이는 것은 다소 슬프지만 재미있기도 하다. 무책임스럽고 가볍게 느껴질 수 있는 ‘어쩌다가’와 ‘얼떨결에’가 사실 인생에서 얼마나 끈적하게 작용되는 메커니즘인지 새삼 느껴지기 때문이다.

 닮았다 뿐이지 내 인생은 역시 미로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여정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쨍쨍한 종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지도도, 힌트도 없지만 한편으론 정해진 코스 역시 없다. 옳은 길도 잘못된 길도 없는 판이 인생이라면 지금의 우당탕거리는 시작들이 어쩌면 어쩌다가, 얼떨결에 종을 울릴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여전히 시작하고 시작 중인 사람의 변명이라면 변명이지만 이것도 없으면 나는 어쩌라고.


#딸랑딸랑 딸랑!!!! 내 인생의 올레! 외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술적 세신사를 찾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