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사랑 영화로 다섯 손가락에 꼽는 영화 중 하나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미 한참도 더 지난 영화인데도 (첫 개봉이 2004년이니 벌써 18년이나 되었다! 세상에~)
지금 다시 봐도 좋은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감독이누도 잇신
출연츠마부키 사토시, 이케와키 치즈루, 아라이 히로후미, 우에노 주리
개봉2004. 10. 29. / 2016. 03. 17. 재개봉
대학교 4학년 츠네오는 마작 게임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리고 어느 날 희한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떤 할머니가 해뜨기 전 커다란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데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얘길 하면서 마약 운반책이다, 귀한 물건이 들어있다 등등 추측이 떠돈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그 유모차를 길에서 딱 마주치게 된다.
할머니가 유모차를 놓쳐 내리막길을 굴러가고 들여다본 유모차에서 식칼을 휘두르며 튀어나온 여자아이, 조제.
할머니와 둘이 사는 조제는 다리가 불편해서 사람들이 없는 새벽에만 유모차를 타고 산책을 나오는 것이었다. 그날 츠네오는 조제를 도와주면서 그녀의 집에 가게 되고, 그녀에 대해 알게 된다.
조제의 원래 이름은 쿠미코지만, 자기 자신을 조제로 불리길 원한다.
다리가 불편해서 늘 옷장 속에서 책을 읽는 조제, 그래서 아는 것도 많고, 요리도 잘하는 조제에게 츠네오는 호감을 가진다. 그렇게 매일 옷장 속에서 읽는 책과, 할머니가 끌어주는 유모차 속에서만 세상을 보던 조제의 삶에 츠네오는 훅 들어온다.
그렇게 조제는 츠네오를 통해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매번 사람이 없는 이른 새벽이나 밤에만 할머니가 밀어준 유모차 속에서 이불에 덮어 빼꼼히 내다보던 세상만 보다가, 한낮에 츠네오와 함께 할머니 몰래 나가서 만난 세상은 빠르고, 살아있다. 조제가 보는 동네 모습들이 스틸컷으로 연출되는데 조제의 머릿속에 사진이 찍히듯 강렬하게 남아있는 듯하다.
그날의 외출은 비탈길에서 엎어져서 끝났지만, 누워서 바라본 구름도 예뻐 보이던 외출이다.
영화를 보면서 짧은 그 장면이 내겐 참 인상적이었다.
2분 남짓한 외출이었지만, 아기처럼 신기하게 바라보던 조제의 표정이 참 좋았다.
그래서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의 결말은 아마도 대부분 다 알 것이다.
결국 조제와 츠네오는 헤어졌다. 헤어져서 끝난 영화가 아니라, 그리고 시작되는 느낌의 영화다.
영화 전체를 스포한다 해도, 그리고 이미 본 적 있다 해도 한 번 더, 혹은 더 많이 보고 싶은 영화.
생각보다 담백한 이별이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실은 단 하나였다.
내가 도망친 거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中
마지막 장면, 조제랑 헤어지고 카네오와 돌아가면서 츠네오가 우는 장면은 대본에는 없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그 폭풍 오열이 둘 사이의 수많은 감정들을 다 보여주는 듯했다.
주저앉아 울던 츠네오와 달리 엔딩에서의 조제는 씩씩한 모습이다.
휠체어를 밀고, 환한 대낮을 다닌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요리를 마친 조제가
높은 싱크대 의자 위에서 털썩 떨어져 카메라 밖으로 훅 뛰어내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다시 봐도 먹먹하고, 영화 이후의 얘기가 궁금해지지만 역시, 이대로 끝나서 좋다.
일본 영화는 워낙에 독특한 제목들이 많지만, 특히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더 독특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정말 잘 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제가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걸 보고 싶었다며 본 호랑이, 아마도 이 호랑이는 조제에게 세상이었을 것이다. 마주하기 두려운 세상.
그리고 조제가 츠네오와 함께 처음 본 바다.
깊고 깊은 바닷속, 그 세상의 물고기는 조제의 세상이다.
그날 밤 함께 묵은 '물고기성 여관'에서 세상에서 가장 섹스를 하고 나눈 둘의 대화.
눈 감아봐... 뭐가 보여?'
'그냥 깜깜하기만 해'
'거기가 옛날에 내가 살던 데야...'
'어딘데?'
'깊고 깊은 바닷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왜?'
'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그랬구나, 조제는 바다 밑에서 살았구나.'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외로웠겠다'
...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지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바다 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게 되겠지.'
그런데 말이야,
그것도 나쁘지 않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中
조제라는 이름은 프랑수아즈 사강 소설의 <한 달 후, 일 년 후>의 주인공 이름이다.
소설 속 조제는 외로움과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소설 속 조제를 사랑하는 베르나르라는 남자는 부인이 있는데도 조제를 사랑한다.
조제는 이 관계가 오래가지 못할것을 안다. 그리고 쿠미코인 조제도 이 사랑이 영원하지 않을것을 안다.
츠네오와 담당하게 이별을 선택하는 쿠미코의 선택이 이해되는 부분이다.
조제는 그 이후에도 조제로 불리길 원했을까? 아니면 쿠미코로 살았을까?
츠마부키 사토시와 이케와키 치즈루의 인생작.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한번 날린 듯한 색감의 톤이 빠져있는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속에 나도 스윽 스며들게 되는 그런 영화다.
넷플릭스, 티빙, 왓차 등에서 볼 수 있으니, 이 추운 겨울 이 영화와 함께 하는 것은 어떨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