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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지 Dec 29. 2020

2019년 해넘이 일기

올해 연초 지녔던 마음

새해면 지난해를 돌아보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짐도 하고 목표도 세워야지. 해가 바뀌었을 뿐이지만 다시 태어난 척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니까.

요즘 해도 잘 안 보이고 춥고 게을러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어렵다. 머릿속으로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하는 생각은 넘치는데 도무지 몸이 안 움직인다. 문제가 뭔지는 안다. 운동 안 하고 영양제 제대로 안 먹고 밥도 잘 안 먹어서 그렇다.

그런데 며칠 전 아침, 침대에서 '이제 새해잖아'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과거를 끌어안고 사는 습성 탓에 2019년의 관성을 못 버리고 있었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서 사람들이 지난해를 반추하며 올리는 게시물들을 보지 않았더라면 관성에 또 매달려 있었을 것이다.

원하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새해가 준 새로운 기회였다. 몸을 일으켰다. 2019년으로부터 아주 조금 멀어졌다. That's the spirit of new year. 생활습관 바꿀 정신머리도 좀 생겼으면.

2019년은 사실 느긋하게 지나갔다. 뼈에 새겨진 불안감을 제외한다면 별 탈 없이, 무리 없이 보냈다. 몸을 사렸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만 하려고 했다. 거절한 것과 내가 선택하지 않은 걸 포함해서 안 한 게 한 것보다 많은 해였다. 거절이 이렇게 쉬웠던 적이 있나. 중간에 그런 고민도 한 것 같다. 이래서 뭐 하나. 바라는 결과를 못 내서 그랬다. 몸 사려 아낀 에너지가 그냥 소멸되는 듯했다.

가끔 마음속에서 퐁 퐁 솟는 뭔가가 있었다. 별 눈길을 주지는 않았다.

지난해가 그냥저냥 흐리멍덩하게 지나갔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항상 그렇듯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소중한 인연도 맺고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났다. 애정 있는 사람들과 마음을 주고받았던 한 해였다. 취준도 여름에 목표했던 바는 달성했으니 잘했다고 칭찬해줄 만하다. 쬐끔. 열심히 한 때가 없던 것도 아니다.

이렇게 써두니 푸념인지 반성인지 변명인지 뭔지. 그만하고 2019년을 쪼개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엄두가 안 난다. 한 해를 늘여놓고 되새기려는데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든다. 그 전 해가 풀리지 않은 뭉텅이로 남아있기 때문일까. 2018년은 인풋과 아웃풋이 끊임없이 많았다. 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복잡하다. '홀로 설 수 있는 건강한 나'를 만들겠다는 목표 하나로 출발했지만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할 것 같은 게 자꾸 생겨나 어느 순간부터 허겁지겁 달렸다.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이유로 우울이 심해졌고, 그 와중에 할 일을 책임져야 했고, 인생은 왜 이리 많이 남은 건지 걷다가 시간에 끌려 텅 텅 뛰다가 2019년으로 넘어왔다.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을 잃어 슬픔에 잠겼던 연말은 연초로 구분선 없이 이어졌다. 그 슬픔은 여전하고, 평생 남아있을 것이며, 살면서 그 위에 새로운 슬픔이 덧대지겠거니 한다. 미리 당황하거나 슬퍼하지 말 것.

2019년 새해에는 별로 바라는 게 없었다. 해야 할 일만 많았다.

사건도 숙제도 의미를 따지고 해결하는 일은 아직도 버겁기만 하다. 완전한 해결도 없는 것 같다. 법륜스님이 맘에 드는 말을 했다. 인생은 두더지 게임 같은 것. 여기 때리면 저기 나온다. 빨리빨리 때리면 빨리빨리 나온다. 한국인들은 인생에서 어쩌다 한번 걸리는 소송, 참 큰일로 여긴다. 미국인들이 쉴 새 없이 소송 걸리듯 문제가 동시에, 연속해서 터지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급한 마음먹지 말고...

작년을 쪼개 보는 일은 천천히 하기로 한다. 큰 용기 말고 작은 힘냄과 습관화된 쪼개기가 나에게 필요하다. 올해도 달리기보다 소처럼 되새김질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당분간 내 인생 패러다임이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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